▲대전지역 전세 사기 피해자 신진호(오른쪽)씨와 윤고은씨.
김선재
#사례1. 집주인은 1987년생 오씨... 피해자 57가구, 금액은 50억
신진호(가명)씨는 신혼부부다. 대전 서구 도마동의 한 다가구 빌라에 거주하다 지난 2월 15일부로 계약기간이 끝났다. 전세금은 1억 2천만 원이고 그 중 90%인 1억 8백만 원은 신혼부부 대출 은행 빚이다. 진호씨는 세 달 넘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집주인은 87년 생 오아무개씨. 임차인들이 전화를 하면 꼬박꼬박 전화를 받으며 "어떻게든 해결해 드리겠다"며 안심을 시켰지만, 결국 해결된 것은 지금까지 아무것도 없다.
"피해가 진행되고 있던 3월 중순쯤에 저와 같은 빌라 다른 호수에 사시는 분께서 '주인이 이 곳 도마동 빌라 하나만 가진 게 아닌 것 같다. 여러 동 있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제가 직접 주인한테 전화해서 '지금 보증금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다른 건물이 몇 동이나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죠. 그러니까 다섯 동 가지고 있데요.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니 처음엔 알려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집 주인에게 '이렇게 무작정 갚겠다고, 기다려 달라고만 하면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하니 그제야 잠깐 고민하다가 알려주더라고요.
도마동뿐 아니라 월평동, 태평동, 내동, 괴정동 이렇게 총 빌라 다섯 동을 소유하고 있었어요. 피해를 입은 빌라 사람들이 한 5월 초쯤에 한 단톡방으로 다 모였는데요. 알고 보니까 그 한 오아무개씨 한 사람으로 인한 피해자가 57가구이었습니다. 피해 금액만 50억 정도로 추정되는 상황이었어요."
도마동 빌라를 시작으로 피해자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신씨는 피해를 인지하고 민형사 소송을 시작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를 시작했다. 소송을 진행하며 상상도 하지 못했던 황당한 사실들을 맞닥뜨렸다.
"제가 계약했을 당시에 임대차 계약서와 함께 주는 서류 중에 중개대상물 확인서라고 있거든요. 거기에 선순위 보증금을 확인하는 란이 있어요. 그 건물에 나보다 먼저 전입해서 보증금이 총 얼마 있는지 확인하는 건데, 당시 그 보증금이 2억 5천만 원 정도 있다고 임대인을 통해서 확인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경매가 터지고 확정일자 부여현황 그리고 전입세대 열람원을 확인해보니 거의 10억 원 가까이가 선순위 보증금으로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계약 당시 저에게 말한 금액의 4배 가까이 선순위 보증금이 있었고, 이건 허위 사실로 계약을 한 거잖아요.
그래서 집주인을 대상으로 사기죄로 형사 소송을 진행중이고요. 민사쪽으로는 이런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계약을 한 공인중개사와 협회를 대상으로 진행중입니다. 저희 피해자 단톡방에서 확인하니 저와 같이 선순위 보증금을 허위로 고지한 사람이 6명이 더 있었어요. 나머지 분들은 선순위 보증금이 뭔지도 모르고 계약을 하셨거나, 아니면 중개대상물 확인서 자체를 공인중개사가 떼주지도 않고 계약한 분들입니다."
계약 진행과정에서의 석연치 않았던 점들은 계속해서 드러났다. 정말 유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는 함정들이 계약의 구석구석 숨어있었다.
"저희 빌라에 다른 입주자 분이 계신데요. 그분은 똑같이 '2억 3천만 원 선수 보증금 있음' 하고, 그 다음 문장에 뭐라고 쓰여 있냐면 '이와 관련해서 법적으로 어떠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확인함'까지 쓰여 있는 거예요. 비록 잘못된 진술이어도 받아들이라는 문장이잖아요. 이를 봐서 미리 법적으로 피해가려고 머리를 썼다는 걸 알 수 있고요. 집주인 본인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그랬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선순위 보증금 허위 진술 등 여러 정황을 볼 때 사기를 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는 거죠."
# 사례2. 비밀번호 알려달라 사정한 집주인... 악몽의 시작
또 다른 피해자 윤고은(가명)씨는 중년의 여성이고 현재 1인 가구로 살고 있다. 진호씨와는 같은 건물의 이웃 사이다. 작년 10월경 집주인 오아무개씨에게 퇴거 의사를 밝혔다. 고은씨의 전세보증금은 1억 2천만 원. 집주인 오씨는 천만 원을 더해 1억 3천만 원에 집을 내놨다고 말했다. 집값이 내려가는 국면에 오히려 전세금을 높여서 부동산에 내놓은 것이 의아했지만, 고은씨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집의 실내를 사진 찍어서 부동산에 내놨는데 단 한군데도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집주인 오씨와 거래한 모 부동산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다음에 올 임차인이 LH전세임대로 진행을 한다고요. 제가 다른 부동산을 통해 내놨을 때는 LH로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는데, 오씨와 통한 부동산에서는 그렇게 된다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어요.
저는 이사 날짜를 정했고, 이사 당일이 됐어요. 아침에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는데, 전화 연락을 안 받더라고요. 보증금을 받아야 이사를 가는데, 연락을 안 받아서 이상하다 싶었죠. 그렇지만 이삿짐은 다 쌌고, 이삿짐은 이미 다 출발을 했어요. 부동산에 연락을 해봤더니 집주인하고 이야기해 보라는 게 다였어요. 제가 마침 다음 들어올 세입자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다음 세입자에게 전화해보니 LH 대출 실행이 안 됐다고 하더라고요."
고은씨가 이삿짐을 빼고 한 시간 후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요구였다.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고은씨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집주인 오씨는 통사정하며 비밀번호를 요구했다.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고은씨를 설득했다. 보증금 문제는 꼭 해결된다며 고은씨를 안심시켰다. 결국 고은씨는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만다.
"이거 분명히 해결되니까 비밀번호 좀 알려달라며 전화를 안 끊는 거예요. 그렇게 얘기를 하고, 또 저한테는 어쨌든 집주인이었잖아요. 결국 비밀번호를 알려줬고, 다음 세입자는 들어왔어요. 저는 다음날인 월요일에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지 않더라고요.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주일이 소요된데요. 세금을 내지 않아 가압류가 걸려있는데, 그게 풀어지려면 일주일 이상이 걸린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그 일주일 사이에 해결은커녕 집주인이 은행에 이자를 내지 못해 건물 자체가 경매에 들어갔어요. 저는 새로 이사 간 집에 전세금을 내지 못하고 있고, 이사는 나왔고, 보증금은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