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정치여성기금운동본부 발대식. 2004년 2월 11일
한국여성재단
살림정치, 여성행동으로
같은 해 선생님은 살림이재단(이사장)을 역말 사거리에 세우셨고, 5층 공간은 모든 여성들의 광장으로 개방되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남성중심 사회에서는 대안은 없다고 보아 이미 준비를 해왔던 것 같았다. 그 해 연말 그 백김치로 유명한 한식 만찬을 계기로 하여 여성 살림정치의 미래가 시작됐다. 2010년 '살림정치 여성행동'이 문을 열었고, 그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살리는 정치가 회자됐다.
2011년 10월 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살림정치 창립마당이 펼쳐졌다. 시민사회단체 등 200여 명이 모여, '정치를 살리고 바로 세우는데 여성들이 나서야 함을 선언했다. 살림정치 여성행동은 과감히 당시 서울시장 범야권 후보 박원순을 초청해 우리의 제안을 전달했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반값 등록금과 함께 여성정책 과제를 요구했다. 이에는 '폭력 제로 마을 안전망 구축', '취약계층 여성의 주거 지원', '1080 생애주기별 여성 건강 지원체계 구축' 등, 여성의 온전한 삶이 있는 대전환의 사회개혁을 요구한 것이다.
'살림정치', 돌보는, 나누는, 살리는 정치
우리 고유 언어인 '살림'은 두 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집(가정)을 꾸려 나가는 일'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살림은 '죽임'의 반대말로 '살리다'의 명사형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주로 전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여성만의 몫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살림'의 어원을 세계적, 역사적 맥락으로 넓혀 볼 필요가 있다. 살림의 뜻은 라틴어의 오이코노미아(Oikonomia)와 같다. 오이코노미아(Oikonomia)는 가사 활동의 재정 관리의 뜻(household)을 갖고 있는데, 이에서 경제학(economics)의 개념이 파생되었다. 동방 정교회나 라틴 가톨릭 교회의 기초교육에서는 경제(oikonomia)를 제한된 자원(물질)을 잘 관리하는 것, 즉 '가정 관리'로 다루었다(박노훈, "신약성서 정치경제의 인류학적 탐색", 2013, 한국민중신학회 스웨덴 위키피디아).
그러나 현재 경제의 의미는 살림의 논리가 아닌 시장 논리라는, 공동체가 배제된 극히 개인주의적이며 자본주의적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원에서 본 것처럼, 원래의 경제는 공동체적인 삶을 기반으로 하여 삶을 유지, 관리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는 공동체 내의 인간 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전제하는데, 그 안에는 중요한 공동체적 가치관 즉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인권으로서의 '자유와 평등'이 내포되어 있다.
특히 평등하지 않은 관계에서의 자유는 이기적·개인적인 한계 내에 구속됨으로, 자유 본래의 뜻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평등의 관점을 사회·문화화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으로 우리 헌법에서도 제11조 평등권이 제12조 자유보다 앞에 나온다. 다만 평등은 연대의식 없이 불가능하므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를 살림을 하듯 구성원의 다양성 존중, 양보와 설득을 통한 평화로운 합의과정을 항상 중요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림을 재해석하면 여성 전담으로 비하되어온 살림살이가 경제의 근간이 되어야 하며 동시에 이러한 경륜을 가장 많이 쌓아온 여성이 세계 시장 경제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 비판의 핵심이다. 이러한 비판 중에는 자본주의와 시장의 주도권을 의미하는 '경제'라는 용어를 아예 '살림'으로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경제학자 강수돌,
홍기빈이다. 홍기빈은 "'살림살이'가 '(남을) 살린다'와 '(내가) 산다'는 두 뜻을 합쳐 놓은 것"으로, "돈벌이 경제학에서 살림/살이 경제학"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홍기빈, 『살림 살이 경제학을 위하여』, 2013, 지식의 날개).
우리가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살림'이나 '오이코노미아' 개념 안에 생태학적 삶의 지향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가정 재원 관리나 지구촌의 제한된 자원을 관리한다는 기본 의미도 그렇지만, 이와 더불어 공동체에서의 돌봄은 자연과의 일치감을 내포한다. 철학자 정성훈 교수는 고대의 소크라테스 제자 크세노폰(Xenofon)의 '살림꾼(Oeconomicus)'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살림꾼은 "공동체들의 수직적 차이(위계질서)를 거부하며, 근면한 돌봄과 생태적 삶"을 추구한다. 또한 "오늘날 '좋은 삶(eu zēn)'을 위한 공동체는 폴리스(도시)를 기원으로 하는 정치 공동체가 아니라 오히려 오이코스(Oikos, 집)를 기원으로 하는 '살림 공동체'"라고 설명한다(정성훈, "'좋은 삶'을 위한 공동체로서 살림 공동체", 「시대와 철학」2020 제31권 3호(통권 92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pp182-216).
크세노폰의 살림꾼은 자신을 둘러싼 자연과의 접촉 속에서 인간의 몸도 단련된다고 보았다. 러닝머신 등에 의한 신체 단련이 아니라 오늘날의 유기농업 종사자들처럼 자연에서 건강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추론에서 평화는 자연스레 이어지는 또 하나의 가치이다. 집이란 안정과 평화 자체를 추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를 '좋은 집'으로 상정한 스웨덴의 이념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좋은 집'에서는 형제간의 갈등이나 차별을 사전에 예방하고 평화를 추구하여 통합사회를 이룬다. 스웨덴은 지속가능사회를 위해 오늘날 녹색국민의 집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