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가 내 도구를 준비하고 계시다. 관록이 묻어나는 사부의 전지가위 케이스가 돋보인다
유신준
사부가 정원사 벨트와 전지가위 가죽 케이스를 고른다. 전지용 작은 톱을 고르려다 맘에 드는 게 없는지 잠시 망설인다. 장인답게 연장에 까다롭다. 자기가 쓰고 있는 메이커를 찾았는데 없단다. 연장은 오래 써야하니 좋은 것 골라야 한다며 연장이 좋아야 일을 잘 할 수 있단다.
내친 김에 안전화를 맘에 드는 것 하나 고르라기에 골랐더니 싼거 고르지 말란다. 돈 신경 쓰지 말고 좋은 것 고르라고. 늘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라서 부모님한테 조차도 이런 말씀 들은 적이 없는데... 잠시 울컥해진다.
계산대에 가져가니 20만 원 가까이 찍힌다. 내가 돈을 내려 했더니 이런 건 본래 사부가 사줘야 하는 거라며 쇼핑백을 손에 쥐어준다. 가게를 나오면서 사부 아는 분을 만났는데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나를 제자라 소개하신다. 제자로 받아들이는 것과 남에게 소개하는 건 다르다. 우리끼리만 서로 그렇게 알고 지내는 게 아닌 거다.
제자로 공표한다는 건 가족이나 마찬가지 관계로 공식 인정한다는 뜻이다. 제자 공표는 본격적이고 구체적인 제자 생활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별로 말씀도 없는 분이라서 억지로 떠맡은 나를 맘에 안 들어 하시나 했더니 오늘은 왠지 분위기가 다르다.
점심은 아는 분의 우동가게에 들렀다. 이 땅은 어디든 아는 얼굴로 이어지는 관계사회다. 우동은 가게에 따라 만드는 면의 종류가 다르다. 부드러운 면과 식감있는 면이 있는데 이곳은 부드러움이 자랑인 곳이다. 가게는 크지 않지만 깔끔하고 가다랑어 국물맛이 진국이다.
새끼 정원사의 첫 나무 손질
오후부터 일을 시작했다. 가게에서는 맘에 드는 게 없었다며 사부가 쓰던 소나무 전용가위를 챙겨주고 손 톱은 날을 새 것으로 갈아 넣어 주셨다. 전지도구를 가죽케이스에 챙겨서 새 밸트에 걸어 허리에 매어주시고는 어때 뿌듯하신가? 한다. 이제 새끼정원사 시작이란다.
정원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게 있는데 연장을 절대로 땅바닥에 놓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밥벌이 도구이기도 하려니와 잘못하면 귀중한 연장의 날이 손상될 수도 있어서 만들어진 계율이라고 설명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