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어디든 노란 조개껍데기 이정표가 순례객을 맞는 길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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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길을 걷고 온 이후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산들이는 아직도 20대니까 아빠는 무한한 가능성의 시간을 걷고 있는 산들이가 좋아보여.
사람들은 말이야, 나이가 들어서 과거의 자기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해 주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다들 비슷한 말을 하는 거 아니?
"너는 잘하고 있어. 그리고 잘 될 거야. 그러니까 지금 너무 힘들어 하지 말고 즐겁게 살아. 나중에 안 그래도 됐는데 괜히 즐기지 못했다고 후회하거든. 하하하."
비슷한 경험, 산들이도 있었지? 산들이가 산티아고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알베르게(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여행자들의 숙소)에 가면 늘 보게 되는 지침서 한 구절에 관한 이야기. 길을 걷는 순례자가 가져야 할 자세를 알려주는 작은 책자에 예외 없이 "늘 감사해라"라는 말이 적혀 있다고.
거길 온 사람들은 인생에서 해결해야 할 무엇인가를 안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각자의 고민을 잔뜩 집어넣어 무거워진 배낭을 메고, 800km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야 하는데 어떻게 감사가 나오겠냐고 했지. 하지만 그 길을 다 걷고 난 다음 너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잖아.
'이제는 정말 모두에게 감사해. 많은 여행을 했지만 ,이토록 내가 소중히 여겨지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
결국 어떤 길이든 걷는 그 순간은 힘들지만, 지나고 나면 그때 더 많이 감사해 하고 즐거워 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니? 그리고 그런 시간이 모여 인생이 된다는 것도.
물론 이 책을 한창 만들던 때 코로나와 맞물려 취직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대학만 졸업하면 너만의 커리어를 멋지게 쌓아갈 줄 알았는데 이래저래 생각대로 되지 않아 속상한 시간이 다시 찾아왔지만.
하지만 산들아, 산티아고 길을 걷고 난 다음 달라졌던 너의 모습, 산들의 진짜 모습을 스스로 발견하고는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들인 그 경험은,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올 때마다 분명 너를 일으켜 세워 줄 거야.
현실에 파묻혀 잊고 있었지만, 마음속 어느 서랍 안에 잘 넣어둔 보석처럼 또 한 번 너를 반짝이게 해 줄 거로 생각해. 그러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맞아, 나 산티아고 길 걷고 나서 그랬어. 내가 얼마나 멋지고 소중한 사람인지 깨달았지' 했던 그 기억을 꺼내 보며, 지금 더 즐겁게 살길 바란다.
책 제목 옆에 적혀 있는 글, 엄마가 너에게 하는 말을 아빠도 똑같이 해 주고 싶어. 산들이가 만날 미래의 수많은 시작을 응원한다고.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좋은 곳도 많이 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남자친구 사귀면 아빠한테도 소개해 주고, 엄마와도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마음만은 푹 담은 추억도 많이 만들길 바란다.
산들이와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아빠로부터.
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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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씨 보세요, 돌아가신 아빠를 대신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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