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프 타워
Widerstand
조로아스터교와 페르시아만큼이나, 석유와 지하자원은 아제르바이잔의 역사에 많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바쿠의 석유 산업 발전은 아제르바이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니까요.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오래 전부터 석유를 사용해 왔다고 하지만, 본격적인 시추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초반입니다. 19세기 중반부터는 원유 정제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죠. 특히 1873년 러시아가 바쿠의 석유 산업을 민간에 개방하고, 규제를 해제하면서 바쿠의 석유 산업은 급격히 성장합니다.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의 형, 로버트 노벨 역시 바쿠의 석유 산업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벌었습니다. 당시 노벨 가문의 브라노벨(Branobel) 사는 바쿠를 기반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회사 중 하나로 성장하기도 했죠.
물론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 제국과, 이어 소련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러시아 제국이 붕괴한 뒤 잠시 독립국가를 꾸렸지만, 러시아는 바쿠의 석유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요. 실제로 2차대전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소련의 에너지 공급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죠. 독일은 바쿠의 석유 공급을 차단하기 귀한 '에델바이스 작전'을 실시하기도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