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는 글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거나 재밌는 장면이거나 생생하다고 생각한 장면)을 포착해서 제목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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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말마다 케이크를 굽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보자. 맛있는 빵을 계속 사 먹을 수 없어서 홈베이킹에 도전했다는 이야기. 그 즐거움과 설렘에 대한 글이었다. 술술 읽히는 문장에 의미도 있어서 많은 사람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처음 제목을 대체할 한 줄 문장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글이 좋으면 제목도 잘 나온다'라고 쓴 바 있지만 예외는 있는 법. '홈베이킹을 하다가 알게 된 것', '가성비보다 가심비' 등등의 아이디어보다 글쓴이가 써서 보낸 처음 제목 '내가 주말마다 케이크를 굽는 이유'가 더 적절해 보였다.
그런데 최종 데스크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무난하지만 밋밋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제목이다. 나중에 선배가 바꾼 제목은 '케이크를 거꾸로 뒤집는 순간 터져나온 탄성'이었다. 바로 아래 대목에서 나온 문장이다. 함께 보자.
오렌지 케이크는 '업사이드 다운 케이크(upside down cake)'로 우리말로 바꾸면 거꾸로 케이크쯤 되겠다. 말 그대로 거꾸로 있기 때문에 뒤집어줘야 한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뜨거운 케이크와의 한판 뒤집기! "우와~!" 틀에서 분리된 케이크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두 제목을 비교하자면 나는 글쓴이가 '홈베이킹을 하게 된 이유'에 집중해 제목을 지은 거고, 선배는 글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거나 재밌는 장면이거나 생생하다고 생각한 장면)을 포착해서 뽑은 거였다. 한 마디로 내가 지은 제목이 2D라면 선배가 지은 제목은 3D인 셈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3D에 반응한다. '뭐지, 이거?' 하며 혹한다.
입체적으로 바뀐 제목을 보자마자 나도 "이야!" 하고 탄성을 질렀다. '이게 더 생생하고 재밌네. 케이크를 거꾸로 뒤집는 순간이라니, 뭔가 더 긴박감도 있고 무슨 일인가 싶은 궁금증도 생길 것 같다'는 나름의 진단도 함께. 그래서 조회수가 어땠냐면, 바꾸기 전보다 적어도 10배 이상의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이러니 더 나은, 더 좋은 제목을 고민할 수밖에.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차이
글쓴이의 의도를 더 존중하고 싶을 때, 제목을 바꾸지 않는다. 더 많이 읽히는 것보다 글쓴이의 생각이 잘 전달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할 때다. 제목을 바꾸기 전에 상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인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제목을 바꿨을 때는 필자에게 원제로 돌려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물론 제목 자체만 놓고 보면 고친 제목이 훨씬 잘 읽힐 문장일 때가 많다. 그러나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누가 더 많이 읽는지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도 있더라. 쓰는 사람과 보는 사람, 서로의 입장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그 입장의 차이를 아쉽지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만 과거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보라고 쓰는 글 아닌가, 왜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할 방법이 있는데 그걸 마다하지?' 조회수를 보면 후회할 선택이라고 예단했다(내가 뽑은 제목이 잘 나오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이제 와 생각하니 부끄럽다).
쓰는 사람이 되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글을 검토하는 나는 어떻게든 이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지만, 글을 쓰는 나는 조회수보다 내 생각이 가장 잘 전달되는 제목이 좋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은 제목을 고치지 말아 달라'고 주문하는 글은 웬만하면 손대지 않는다(팩트가 틀리거나 혐오나 차별을 담은 제목이 아니라면 말이다). 결과를 앞서 재단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아닌, 많이 읽히지 않아도 좋을 이유가 있을 테니. 물론 설득하는 일도 없지는 않다.
제목을 고치는 게 자신 없을 때는 확신이 없는 경우이지 않을까? 내가 잘 읽은 게 맞나? 이해한 게 맞나? 그런 불안이 엄습할 때.
양질전환의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