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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장례식장 보이는 데로 가주세요"... 택시기사가 차 돌린 이유

[인터뷰] 2명의 사람 살린 택시 기사 이호연씨 "콜 계속 울렸지만, 사람이 먼저니까요"

등록 2023.06.18 11:52수정 2023.06.1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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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T! 카카오 T!'

수없이 울리는 카카오 콜 소리 대신 손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택시 기사가 있다. 차를 돌려 승객이 있던 곳으로 다시 가, 모른 척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경광봉을 흔들었다. 시간과 움직인 거리가 곧 돈인 택시기사, 이호연 기사(29)는 쏟아지는 '콜'을 외면한 채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 

지난 2월에는 도로에 쓰러져 있던 노인을 도왔고, 지난 3월에는 스스로 삶을 끝내려던 사람의 선택을 막았다. 충청북도 충주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이호연 기사는 이 일로 '충주시장 표창'을 받았고 카카오 모빌리티의 '도로 위 히어로즈'로 선정됐다. 

그 선행의 이유를 묻기 위해, 지난 5월 23일 충주시에 위치한 선재 택시에서 그를 만났다. 

신고에 그치지 않고 차를 돌려 다시 승객에게 간 이유 
 
a 장례식장이 보이는 대교 충북 충주시의 한 다리다. 깊은 강 위 대교 난간에 서면 장례식장이 보인다.

장례식장이 보이는 대교 충북 충주시의 한 다리다. 깊은 강 위 대교 난간에 서면 장례식장이 보인다. ⓒ 이나혜

 
3월 26일, 드라이브하기에도 산책하기에도 더 없이 좋은 날씨였다고 한다. 새벽 1시 30분, 한 청년이 이 기사의 택시에 올라 탔다. 청년의 요구는 간결했다. "강과 다리, 장례식장이 보이는 곳으로 가주세요." 5분도 채 되지 않은 거리에 두세 마디밖에 주고받지 못했지만 이호연씨는 '목적지'에서 위험함을 느꼈다고 한다. 

"새벽 한시 반에 강과 다리, 장례식장이 보이는 곳으로 가달라는 게 누가 들어도 이상하잖아요. 충주에 그런 곳이 한 군데밖에 없어요. 거기가 자살대교라 불리거든요. 강이 깊고 다리가 높으며 바로 앞에 장례식장이 보여서요." 

손님이 내린 뒤 112에 전화를 걸었다. 청년이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다, 빨간 줄이 갈 것 같다"고 한 말에 꺼림직함을 떨칠 수 없어서였다. 그는 신고만으로 그치지 않고 손님을 찾아 다시 돌아갔다. 손님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시작됐다. 


"마지막에 태운 사람도, 내려드린 것도, 본 사람도 저잖아요. 원래는 전화로 끝이죠. 그래도 경찰이 오는 시간이 있잖아요. 만약 안 좋은 결정을 하면 골든타임이라는 게 있으니까 걱정돼서 택시를 돌렸어요."

그가 갔을 때 손님은 대교 난간에 올라가 있었다. 경찰이 올 때까지 청년과 대화를 나눴다. 위로뿐만 아니라 자신이 힘들었던 상황을 말하며 손님을 설득했다. 


"자극적인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하지 마세요', '왜 그러세요?' 이런 말은 하지 않았어요. 반대로 제가 힘들었던 상황을 이야기했어요. 그러면 손님이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생각하고 기분이 나아질 거 같아서요." 

경찰관이 와서 함께 설득을 해도 손님이 안정이 되지 않아 택시 안에 있던 캔 커피를 손님 손에 쥐여줬다. 

"마음 편히 대화할 때 커피 한 잔이면 다 괜찮아지잖아요. 손에 커피를 쥐여 주는데 딱 한 마디 하시더라고요. '저 커피 안 좋아하는데요' 그 한 마디에 분위기가 풀린 거 같아요."

손님은 경찰관과 함께 무사히 돌아갔다. 다음 날 지구대로부터 손님을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인계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승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앞으로 그런 데 가지 말고 좋은 거 먹고, 좋은 데 가고, 시간에 쫓기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다음에 손님이 또 택시를 탄다면 '탄금공원'에 내려 주고 싶다고 했다. 

"손님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없는 공원으로 데려다주고 싶어요. 꽃도 보고 산책하기 좋으니까요."
 

못 본 척 지나가는 사람들 속 경광봉을 흔들다
 
a 이호연 택시 기사  두 달 새 두 생명을 구한 이호연 택시 기사이다. 지난 3월 자살 시도자의 생명을 지키고, 2월에는 도로에 쓰러져 있던 노인을 도왔다.

이호연 택시 기사 두 달 새 두 생명을 구한 이호연 택시 기사이다. 지난 3월 자살 시도자의 생명을 지키고, 2월에는 도로에 쓰러져 있던 노인을 도왔다. ⓒ 이나혜

 
그의 선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에도 피를 흘린 채 횡단보도에 쓰려져 있는 노인을 구했다. 시내 안 주택가인데도 많은 차와 사람들이 그대로 지나쳤다. 

"손님을 내려드리고 출발하는데 맞은편 횡단보도에 사람이 반듯하게 누워있었어요. 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못 본 척하고 가더라고요. 그냥 지나가는 세상이 슬펐어요. 날씨도 추웠는데… 내 가족이었으면 저렇게 지나갈까 생각이 들었죠. 바로 차를 돌려서 달려갔어요. 이미 오토바이 운전자가 신고를 했다고 해요. 신고는 하고 맞은편에서 보고만 있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되잖아요. 신고를 또 하고 어르신 곁으로 갔어요."

그는 경광봉을 흔들기 시작했다. 오후 8시가 넘은 시각, 가로등이 없는 어두운 도로에서 쓰러져 있는 노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제가 안 막고 있으면 어르신 머리 쪽으로 차가 오니까 옆에서 수신호를 했어요. 어르신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어서 섣불리 일으켜서 데리고 나갈 수 없었어요. 경광봉 두 개를 가지고 한 쪽 막고, 한 쪽 보내고 계속 흔들었어요." 

경찰관이 온 뒤에도 그의 경광봉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구급차가 올 때까지 계속 경광봉을 움직였다. 경찰관이 어르신을 확인하고 조사할 때 혹시 사고가 날까 봐 교통정리를 한 것이다. 

경광봉이 어디서 났을까. 그는 면허를 취득하고 나서부터는 경광봉을 항상 구비해 놨다고 한다. 위험 상황에 핸드폰 플래시를 흔드는 것이 2차 사고를 유발한다는 뉴스를 보고 사람들 눈에 띄는 걸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선택한 건 경광봉. 여기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경찰은 빨간 경광봉을 갖고 다니잖아요. 저는 반반이에요. 눈에 더 띄게 한쪽은 빨간색, 한쪽은 파란색이에요. 사람들이 빨간색 경광봉이면 공사하나보다라고 생각해 쉽게 지나갈 수 있어요. 빨리 가려고 브레이크보다 액셀을 밟죠. 빨간색과 파란색이 함께 있으면 생소하잖아요. 브레이크를 한 번 더 밟게 하는 목적이에요." 

카카오 T보다 손님의 말에 더 귀 기울여

경광봉을 들고 노인을 구할 때도, 청년을 말릴 때도 한창 바쁠 시간이었다. 카카오 콜이 밀릴 정도로 울렸다고 한다.

"그때가 한창 바쁠 시간이에요. 콜이 밀렸어요. 어르신을 도울 때가 2차, 3차 술 드시고 택시 요청이 많은 시간이에요. 할증 시간이 오후 10시로 당겨져서 8시부터가 피크 시간이거든요. 자살 시도 청년을 구할 때는 할증 시간이어서 40%를 더 받아요. 그래서 바쁘죠. 전날 다른 지역을 갔다 와서 새벽에 어느 정도 일을 해야 수입을 얻을 수 있어서 그 날은 새벽 시간대 근무가 중요했어요." 

하지만 울리는 카카오 소리는 그에게 잘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카카오 소리보다 손님의 말이 더 크게 들렸거든요. 콜이 울리는데 우선순위가 아니어서인지 들리지 않더라고요. 콜은 365일 들을 수 있는데 손님의 이야기는 그때가 마지막이잖아요. 그래서 손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된 것 같아요."

택시 기사가 기본적인 수입을 얻으려면 평균 10시간 이상 근무가 필수적이라고 한다. 그는 "10시간 이하로 일하면 수입이 나올 수 없다"며 "무리해서라도 운행하게 돼서 근무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택시기사에겐 근무시간과 운행 거리가 곧 돈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 시간 가까이를 포기한 채 사람을 구했다. 아쉽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그게 우선인가요?"라고 되물으며 "일단 돈이고 뭐고 사람이 먼저니까요"라고 말했다.

이 기사의 선행이 알려지자, 걱정의 말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물에 빠진 걸 구조했는데 보따리 내놓으라는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염려다. 

"사람들이 어르신 같은 경우도 택시 기사 때문에 쓰러졌다고 말할 수 있지 않냐고 하더라고요. 블랙박스 영상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정도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에 몸이 먼저 나가는 거죠. 모든 상황에 대해서 저도 보호하면서 도와드립니다. (안전장치가) 있으면 도와주기가 더 쉬워요."

그가 그날 새벽 청년에게 '캔커피'를 건넨 것처럼, 7살 아이는 그에게 '초코우유'를 건넸다고 한다. 선행을 알게 된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그는 삭막해진 사회지만, '관심'으로부터 모든 게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한다. 

"관심이나 귀 기울임이요. 작은 소리를 듣고 외면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관심으로 모든 게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a 이호연 택시기사  충청북도 충주에서 택시 기사를 하고 있는 이호연 씨. 지난 3월 자살 시도자의 생명을 지키고, 2월에는 도로에 쓰러져 있던 노인을 구했다.

이호연 택시기사 충청북도 충주에서 택시 기사를 하고 있는 이호연 씨. 지난 3월 자살 시도자의 생명을 지키고, 2월에는 도로에 쓰러져 있던 노인을 구했다. ⓒ 이나혜

 
#자살예방 #사람 살리는 택시기사 #택시기사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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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두려움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사람들은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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