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 첫 스타트 체리농부 배정희씨.
최미향
시골로 가서도 잘살 거라는 부모님 말씀이 씨가 됐는지 현재 충남 서산시 인지면 애정길에서 무방부제 안심먹거리 '애정체리농원'을 운영하는 가수 배정희씨를 만났다.
"결혼할 때 처음 우리 시누들이 제 얼굴을 보더니 사치만 아는 한량인 줄 알고 탐탁지 않게 생각했어요. 남자가 수레를 끌면 밀어주지도 않을 사람처럼 보였나 보죠. 지금은 반대로 저를 홍길동으로 봐요. 제가 수레를 끌잖아요(웃음)."
그녀는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 서울과 가까운 서산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워낙 부지런한 성격 탓에 손을 놀릴 수 없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나아가 지금의 체리농원으로 성장시켰다.
지난 10일에 만난 그녀는 장화를 신은 채 팔에는 소쿠리를 걸고 체리 수확에 한창이었다.
- 어린시절부터 '어린농부'였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이야기를 들려달라.
"내 고향은 아름다운 남쪽 나라 전남 장흥이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대부분 자연과 농사에 관련한 것들이 많다. 평화롭고 조용했던 전경들과 드넓게 펼쳐진 논밭 사이로 파란 새싹들이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들, 하긴 지금 생각하니 아름답지 그때야 이런 생각인들 했겠는가.
지독하게 부지런하신 아버지와 언제나 당당하신 어머님 사이에 3남 5녀 중 둘째로 태어나 시끌벅적한 형제들 사이에서 자랐다. 8남매 중 둘째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은 상처와 결핍이라는 단어로 나를 바라보기도 한다. 사실이다. 큰딸과 큰아들에 대한 편애가 유난스러워 힘든 적도 많았다. 그래도 옛날 분이시니 어쩌겠나.
아무튼, 옛날 한창 바쁜 시기에는 일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러니 시골에서 자식 많으면 큰 복이라고 느낄 그 시기에 우리 부모님은 똘망똘망한 자식들 얼굴만 봐도 얼마나 든든하셨을까.
농사 채가 많았다. 대부분 일은 작은 집과 묶어서 했는데 우리 집은 제일 먼저 시작했었다. 그리고 작은 집 일을 모두 끝내놓고 다시 제일 늦게 마무리 했다. 당시 나는 주로 남자들이 하는 일을 더 좋아했다. 낫질도 하고 새끼도 꼬고. 엄마가 시키기도 했다.
우리 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부지런하시기도 했지만 손재주도 굉장한 분이셨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풍로를 만드는 일을 하셨는데 주문이 밀릴 정도였다. 그 덕에 우리 집은 그리 가난하지는 않았다. 허드레 작업복을 입은 채 아버지가 일하시면 나는 언제나 배워나가기라도 하듯 아버지의 손길을 찬찬히 내려다보며 옆에서 도와주기도 했다. 훗날 내가 마치 농사꾼이 될 것을 예측한 것처럼. 그렇게 57세 이른 나이로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의 하루는 언제나 분주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