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숨바꼭질 파트너는 세 살 난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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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을 바꾸어 숨어보라고 시키고 방 밖에서 기다리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문 앞에 턱하니 서 있거나 이불 밖으로 몸은 다 내놓은 채 얼굴만 가리고 있다. "아니, 숨으라니까아" 하면 자기도 웃긴지 키득키득 웃는다.
긴장도가 약간 떨어지지만 뭐, 다른 선택지가 딱히 없다는 점, 그리고 긴장감 대신 귀여움을 한껏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만한 파트너가 없다. 서로 죽이 맞아 희희덕거리며 숨바꼭질을 해대는 우리를 보며 남편은 혀를 찬다. "너네 엄마는 참 숨바꼭질에 진심"이라며.
조금 더 큰 아이와 숨바꼭질을 같이 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뛴다. 그렇지만 그때가 되면 더 이상 숨는 역할을 독점하지는 못할 테지. 술래는 언제나 나의 몫이 될지도 모르겠다. 눈에 들어오는 아이의 발가락을 보며, 또렷이 들려오는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도 예전의 엄마처럼 혼신의 연기를 펼쳐야 하겠지.
아이가 정말로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에 꼭꼭 숨어버릴 수 있게 된다면, 숨바꼭질은 우리에게 대등한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아무래도 누가 누구를 봐주는 게임보다는 냉혹한 승부가 재밌는 법이니까.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그때가 되어도 아이가 나와 숨바꼭질을 해줄까. 그건 모를 일이지만 숨바꼭질에 대한 나의 진심이 식지 않을 때까지 아이와 숨바꼭질을 하는 것이, 그럴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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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닌 지 10년, 아이를 키운 지는 3년이 되었고요,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와 더불어 살기 좋은 세상에 대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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