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놔두고 다니는 지혜도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준 에어팟
박여울
에어팟으로 음악이라도 들을 수 있어 나는 새벽 걷기를 지속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준비물을 필수품으로 생각하며 꼭꼭 챙겼다. 하지만 운동 필수품이 없는 오늘은 허전하고 아쉽기보다는 내가 운동을 할 때 그동안 무엇이 부족했는지 그리고 어떤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운동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작년 3월의 일이 떠올랐다. 나는 3년의 육아휴직을 뒤로하고 직장으로 복직을 했다. 약 2주 동안 자차로 운전을 하며 직장으로 향하는 그 길이 너무 즐거웠다. 휴직한 사이 운전 실력이 많이 늘어 이제는 능숙하게 고속도로 운전을 이어간 나는 매일 뿌듯함이 느꼈다. 출퇴근 길도 드라이브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내 복직의 기쁨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감정도 2주가 지나자 점점 시들시들해졌다. 운전에 피로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좋은 말도 한두 번이라는 말처럼 운전도 매일매일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날 아침 갑자기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해 봐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쁜 아침이었지만 직장까지 가는 버스의 도착시간을 핸드폰으로 확인한 뒤 재빨리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버스를 타고 출근한 그날로부터 나는 바로 대중교통 마니아가 되었다. 이후로 11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유류비를 아끼고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건 부차적인 소득이었고 무엇보다 내 눈과 손이 자유로워져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버스를 기다리거나 타는 동안 나는 유튜브 강연을 듣거나 새벽에 써둔 글을 수정했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버스 벽에 기대어 쪽잠을 자기도 했다.
일 년 동안 버스로 출퇴근을 하며 나는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으로 시간을 채워가며 많이 성장했다. 아마도 자차로만 출퇴근을 이어갔다면 운전하는 그 시간을 의미 있게 활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나는 에어팟을 잊은 채로 나갔지만 오히려 몸이 가볍게 느껴지고 내 몸의 움직임에 새로이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 차를 두고 버스로 직장을 오갔더니 오히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시간을 얻었다. 이처럼 삶을 살아갈 때는 오히려 편하고 좋게 생각하는 무언가를 잘 빼보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 중 어떤 것은 꼭 필수적인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무언가를 더 하고 또 더 큰 성취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때로는 충분히 누리고 있던 무언가를 빼고 사는 가벼움과 지혜도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은 하루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