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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평의 정원을 가진 여자 최미숙

[인터뷰] 자신이 만든 정원에서 명상을 하면서 마음의 평화 얻어

등록 2023.06.17 19:44수정 2023.06.1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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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꽃들이 무성한 싱그러운 정원 모습
여름 꽃들이 무성한 싱그러운 정원 모습오문수

행복의 가장 큰 조건은 무엇일까? 전 미국 심리학회 회장을 역임한 마틴 셀리그만은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이다. 셀리그만은 행복의 조건을 5가지로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긍정적인 정서, 몰입, 관계, 의미, 성취감이다.


셀리그만이 제시한 행복의 조건 5가지를 생각하면서 한반도 남쪽 끝 돌산의 조용한 섬마을 산골짜기에서 20여 년 동안 정원을 가꾸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최미숙씨가 생각나 그녀의 정원을 6월 초 방문했다.
  
 오후 햇살 아래 자주 차를 마시는 공간. 작은 철제 가제보
오후 햇살 아래 자주 차를 마시는 공간. 작은 철제 가제보오문수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가장 큰 조건은 '설렘'이라고 말한 최미숙씨의 원래 직업은 약사이다. 왜? 하필 하고많은 행복의 조건 중에 '설렘'이냐고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그 어떤 성취를 이룬다 해도 설렘 없는 삶은 곧 지루해지고 말 것입니다. 정원을 가꾸면서 제가 느끼는 가장 큰 기쁨도 매일 매순간 살아 생동하는 변화무쌍한 정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설렘입니다."

상상 못할 곳에 자신만의 천국을 만들다

여수 시내에서 돌산대교를 건너 승용차로 20분 남짓 달려 차 한 대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농로를 지나면 최미숙씨가 손으로 이룬 아름다운 정원이 나온다. 차에서 내려 '춤추는 정원'이란 팻말이 적힌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야말로 환상의 세계가 나타난다.
  
 신우대 대밭 옆 천 평 녹차밭 모습
신우대 대밭 옆 천 평 녹차밭 모습오문수

돌담길을 따라 싱그럽게 피어난 녹차밭을 지나 10여 미터 내려가면 그녀가 만든 3천여 평 정원이 나타나고 온갖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개나리, 수선화, 장미, 작약, 동백나무, 후박나무, 비파나무 등 많은 나무가 있지만 그녀가 최고로 치는 보물은 천여 평에 손수 심은 녹차이다.

정원에는 고요함을 배경으로 많은 소리가 오간다. 바람에 서걱서걱 나뭇잎 스치는 소리, 졸졸졸 도랑물 흐르는 소리, 멀리 산에서 들려오는 산짐승 소리, 심지어 산 너머 뱃고동 소리까지.
 
 춤추는 정원의 소박한 나무 대문
춤추는 정원의 소박한 나무 대문오문수
   
 정원에서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운 명상의 집 모습
정원에서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운 명상의 집 모습오문수

그녀 정원에는 그 어떤 천재 예술가도 표현할 수 없는 음악과 색채의 향연이 날마다 펼쳐진다. 새 지저귀는 소리, 신우대 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 봉수골을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 이따금 뒷산에서 들려오는 고라니 울음소리도 정겹다.


영화나 TV에 등장하는 재벌집 정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지만 도시의 소음과 산만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처음 그녀의 정원을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매력 만점의 힐링 장소이다.

고통스럽던 젊은 시절에 찾아온 명상


남편 김만수씨는 여수 시내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의사다. 연세대학교 정외과 재학 중 민주화 운동을 하다 졸업 후 잡지사에 취직했지만 적성이 맞지 않아 다시 한의대를 다닌 후 한방병원을 개업했다.

약대 졸업 후 한의대생인 남편을 위해 10년 동안 약사로 재직한 최미숙씨는 학창 시절에 진보적 정치사상을 공부하기도 했다. 타고난 소심증 때문인지 사회변혁 운동의 중심에 서지는 못했지만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무엇보다 가부장적 사회를 비판하는 여성해방 이론은 자유로운 삶을 담보하는 사상적 무기로 여겨졌다. 약사라는 직업 세계에서도 너무나 많은 불합리한 문제를 목격해야 했고 가사와 육아 등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불만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투쟁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운명처럼 명상이 다가왔다. 명상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하게 그녀의 존재를 깨웠다. 진보적 사상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의식을 깨웠다면 명상은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영혼을 깨웠다.

운명처럼 만난 시골집과 '자인'

남편이 뒤늦게 한의대를 졸업하고 개원해 가정 경제를 책임지자 남편에게 "적어도 10년 동안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겠다"고 선언한 그녀는 약국을 그만뒀다.

"평생 내가 몰두할 수 있는 일, 수행적 삶과 병행할 수 있는 일, 거기다 재미있기까지 한 일은 어디 없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우연히 사놓은 항아리를 갖다 놓을 시골집이라도 한 채 구해서 조그만 텃밭이라도 가꾸면 재미있을 것 같아 봉수마을 맨 끝 산골짜기 집을 샀어요."

그녀의 멋진 정원을 본 사람들이 부러워하겠지만 처음 집을 샀을 때 정원은 허허벌판에 온갖 지저분한 가건물이 널려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조금씩 사다 심으면서 정원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집안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정원을 만들겠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은 은근히 비웃기까지 했다.

심지어 동네 사람들조차 사모님 소리 들으면서 치맛자락이나 날리고 다니지 왜 이런 험한 곳에 와서 고생하냐면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 "내가 도대체 왜 이런 데서 혼자 이러고 있지?"라는 회의가 들 때도 있었다.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참 정원에 열정을 쏟아부으며 좋아하고 있을 때 태풍에 쑥대밭이 되기도 했고 정원이 도시계획지구에 포함돼 없어질 위기도 있었지만 운명의 여신은 그녀의 손을 들어줬다.
  
 아내와 함께 춤추는 정원을 방문하자 '자인'이 기타를 치고 최미숙(서있는 분)씨가 노래를 해 함께 7080노래를 합창했다. 왼쪽 모자쓴 분이 최미숙씨 남편인 김만수씨로 여수에서 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춤추는 정원을 방문하자 '자인'이 기타를 치고 최미숙(서있는 분)씨가 노래를 해 함께 7080노래를 합창했다. 왼쪽 모자쓴 분이 최미숙씨 남편인 김만수씨로 여수에서 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오문수
 
정원 만들면서 인부들과 갈등이 생겨 힘들어하고 있을 때 '자인'이 환한 모습으로 웃고 들어왔다. '자인'은 명상센터에서 한 때 같이 공부했던 도반이다. '자인'은 오랫동안 명상과 더불어 차 공부를 해온 터라 차에 대한 미각과 지식이 뛰어나다. 그녀는 '자인'에 대해서 "우리 정원을 위해 신이 주신 선물이에요"라고 칭찬했다.

춤명상을 통해 평화가 찾아오다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적개심,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분노를 풀기 위해 떠난 인도 푸나의 '오쇼 아쉬람'의 춤명상은 그녀 내면에 쌓인 억압된 감정과 에너지를 폭발시킨 뒤 명상에 들게 했다.
 
 돌담과 인생 나무 아래에서 즐거운 가든파티 모습
돌담과 인생 나무 아래에서 즐거운 가든파티 모습오문수

"오쇼 아쉬람에서 평생 춰도 다 못출 춤을 췄어요. 춤으로 시작해서 춤으로 끝났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내 안에 억압된 감정과 에너지를 분출했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춤과 더불어 마음껏 울었고 마음껏 웃었습니다. 내 안에 그렇게 많은 슬픔과 웃음이 있는지 몰랐어요. 울음과 웃음이 빠져나간 자리에 자연스럽게 침묵과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6월이면 그녀는 천 평 차밭에서 딴 차를 채취해 정성껏 차를 만든 후 지인들과 함께 정원에서 가든파티를 즐긴다. 김밥과 샐러드, 떡과 샌드위치, 과일만으로도 정원에 차려진 식탁은 풍성하기 그지없다. 거기에 '자인'의 기타연주, 길벗들의 시낭송,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남편의 노래와 그녀가 주관하는 춤 테라피까지 곁들이면 환상의 가든파티가 된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사람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만든다. 그녀는 아름다움의 근원을 '꽃'에서 찾았다. 꽃이 무엇인가? 식물의 생식기다. 자연의 에로티시즘이 가장 황홀하게 발현되는 곳이다. 그녀는 자신과 대화했다.
  
 6월 가든파티 때 회원들과 함께하는 춤명상 모습
6월 가든파티 때 회원들과 함께하는 춤명상 모습오문수

"내 여성성을 긍정하고 마음껏 발휘하리라! 내 에로티시즘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산하리라! 이것이 내가 꽃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힐링 메시지이다."

그녀는 20년 동안 손수 가꾸고 만든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책 <춤추는 정원>으로 출판했다. 그녀의 책을 두 번 읽으며 그녀는 셀리그만의 행복의 조건 5가지를 완벽하게 이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만의 정원을 만들며 긍정적으로 변했고, 정원에 몰입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춤추거나 가든파티를 즐기며 삶의 의미를 깨달았고, 자신의 힘으로 이뤄낸 멋진 정원에 대한 성취감을 맛보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춤추는 정원

환희 (지은이),
섬앤섬, 2019


#춤추는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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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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