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서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운 명상의 집 모습
오문수
그녀 정원에는 그 어떤 천재 예술가도 표현할 수 없는 음악과 색채의 향연이 날마다 펼쳐진다. 새 지저귀는 소리, 신우대 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 봉수골을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 이따금 뒷산에서 들려오는 고라니 울음소리도 정겹다.
영화나 TV에 등장하는 재벌집 정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지만 도시의 소음과 산만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처음 그녀의 정원을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매력 만점의 힐링 장소이다.
고통스럽던 젊은 시절에 찾아온 명상
남편 김만수씨는 여수 시내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의사다. 연세대학교 정외과 재학 중 민주화 운동을 하다 졸업 후 잡지사에 취직했지만 적성이 맞지 않아 다시 한의대를 다닌 후 한방병원을 개업했다.
약대 졸업 후 한의대생인 남편을 위해 10년 동안 약사로 재직한 최미숙씨는 학창 시절에 진보적 정치사상을 공부하기도 했다. 타고난 소심증 때문인지 사회변혁 운동의 중심에 서지는 못했지만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무엇보다 가부장적 사회를 비판하는 여성해방 이론은 자유로운 삶을 담보하는 사상적 무기로 여겨졌다. 약사라는 직업 세계에서도 너무나 많은 불합리한 문제를 목격해야 했고 가사와 육아 등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불만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투쟁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운명처럼 명상이 다가왔다. 명상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하게 그녀의 존재를 깨웠다. 진보적 사상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의식을 깨웠다면 명상은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영혼을 깨웠다.
운명처럼 만난 시골집과 '자인'
남편이 뒤늦게 한의대를 졸업하고 개원해 가정 경제를 책임지자 남편에게 "적어도 10년 동안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겠다"고 선언한 그녀는 약국을 그만뒀다.
"평생 내가 몰두할 수 있는 일, 수행적 삶과 병행할 수 있는 일, 거기다 재미있기까지 한 일은 어디 없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우연히 사놓은 항아리를 갖다 놓을 시골집이라도 한 채 구해서 조그만 텃밭이라도 가꾸면 재미있을 것 같아 봉수마을 맨 끝 산골짜기 집을 샀어요."
그녀의 멋진 정원을 본 사람들이 부러워하겠지만 처음 집을 샀을 때 정원은 허허벌판에 온갖 지저분한 가건물이 널려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조금씩 사다 심으면서 정원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집안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정원을 만들겠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은 은근히 비웃기까지 했다.
심지어 동네 사람들조차 사모님 소리 들으면서 치맛자락이나 날리고 다니지 왜 이런 험한 곳에 와서 고생하냐면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 "내가 도대체 왜 이런 데서 혼자 이러고 있지?"라는 회의가 들 때도 있었다.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참 정원에 열정을 쏟아부으며 좋아하고 있을 때 태풍에 쑥대밭이 되기도 했고 정원이 도시계획지구에 포함돼 없어질 위기도 있었지만 운명의 여신은 그녀의 손을 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