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많이 보고, 많이 들어야 뽕을 뽑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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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그게 본 거냐?' 나는 팩! 하고 토라져 버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2배속으로 보는 것을 내 남편만의 특이한 행태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한 술 더 떴다. 내가 하고 있는 글쓰기 수업에서 아이들이 갑자기 이런 요구를 해왔다.
"선생님, K팝 틀어주세요. 2배속으로요."
"어? 2배속으로? 그렇게 들으면 진짜 웃기게 들릴 텐데..."
"괜찮아요. 요즘은 다 그렇게 들어요. 그래야 다른 노래도 더 많이 들을 수 있죠."
결국 모기가 파닥대는 것 같은 음악을 웃음을 참아가며 들어야 했다. 나는 이 같은 현상이 재밌으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주변에 물어보았더니 정속으로 보는 내가 비정상으로 느껴질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 음악, 강의, 예능 등... 수많은 콘텐츠들을 2배속으로 소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유를 들어보니 한결같이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싶어서라고 했다. 영상 콘텐츠의 뷔페화라고나 할까... 무조건 많이 보고, 많이 들어야 뽕을 뽑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요즘은 영화며, 드라마며, 예능, 음악 등...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의 종류와 개수가 무궁무진하다. 연신 언론에서 이슈가 되거나, 주변인의 추천으로 보고 싶은 콘텐츠는 점점 늘어나는데 그것을 다 보지 못할 시에는 뭔가 소외된 기분이랄까? 남들이 다 아는 얘기를 나만 모르는 느낌이 들어 초조하고 조급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나처럼 2배속 현상에 일찌감치 호기심을 느낀 작가가 있었다. 저자인 이나다 도요시는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통해 오늘날의 사회 현상을 분석했는데 한국의 현 상황과 닮은 지점이 많아서 흥미로웠다.
저자는 사람들이 콘텐츠를 빨리 감기로 보는 이유로 영상 작품의 공급 과다와 바쁜 현대인들의 시간 가성비 지향을 들었다. 그리고 그 사회 이면에는 '시간이 없어', '생각하기 귀찮아', '실패하면 안 돼'라는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했다.
'맞아, 맞아' 하면서 맞장구를 치면서 읽다가 '실패하면 안 돼'라는 부분에서 주춤했다. 빨리 감기로 본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닐 텐데...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은 SNS로 또래와 자신을 쉽게 비교한다. SNS는 만난 적도 없는 또래의 성공을 계속 바라보게 만든다. 이는 상당한 스트레스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신에게 조바심이 나기 때문이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서 친구들은 물론이고 비슷한 나이에 무언가를 성취했거나 주목받는 인물의 소식을 언제든지 접할 수 있어요. 늘 옆을 보고 있는 거죠. 그러니 자신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또래들에게 뒤처졌거나 실패했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트랜드를 이해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늦을 시 이를 자신의 실패로 여긴다는 뜻이었다. 트랜드에는 영상 콘텐츠가 기반이 된 것들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빨리 감기로 보면서 많은 것을 소화하고, 아니다 싶을 시에는 재빨리 다른 콘텐츠로 갈아타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찾지 못한 인생의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