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고기스테이크
정누리
나의 자취방에 이상한 별명이 붙었다. '급식소'란다. 친구들을 불러 밥을 몇 번 먹였더니 이렇게 됐다.
시작은 이러했다. 난 항상 요리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본가에선 엄마가 주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엄마는 내가 설거지 거리를 만들고 어지르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취를 시작하자마자 산 것이 각종 요리도구와 식재료였다. 출근하면서 고기를 재우고, 집에 와서 양념에 끓인다. 매일같이 갈비찜, 알리오올리오, 양고기스테이크…. 만들고 보니 양이 너무 많아 혼자 사는 친구들과 함께 먹는다. 나의 홀로살기 첫 일탈은 '요리'였다.
급식소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특이한 식생활이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그렇다면 다른 자취생들은 어떻게 산단 말인가? 나보다 먼저 홀로 살고 있던 지인들을 살펴보았다. 완전히 천차만별이다.
밥 해 먹는 방식부터, 식재료 사는 곳, 설거지 패턴까지 모두 제각각이다. 모두 모아 '주방 관찰 일지'를 써도 될 정도다. 이래서 다르게 살아온 여럿이 만나면 필시 싸운다는 것인가보다. '먹고 산다'라는 말 안에 담겨 있는 수십가지의 패턴. 소소한 자취생들의 식생활을 비교해본다.
밥을 어떻게 해먹는가
중점은 '밥을 어떻게 해먹는가'다. 서양과 비교했을 때, 자취의 난이도를 높이는 것이 '쌀'이다. 빵이야 사와서 잘라 먹으면 되지만, 쌀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전기밥솥을 처음 본 순간 난감해진다. 막상 해보면 별 것 아닌데도. 밥맛에 치중할 것인가, 간편하게 먹을 것인가, 주방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등등 다양한 관점에 따라 밥 해먹는 방법을 택한다.
전기밥솥을 택한 친구의 이유가 인상적이다. "매일 갓지은 밥을 먹는 게 유일한 낙이다." 70~80세 할머니가 할 법한 말을 진심으로 털어놓는다. 퇴근하고 오자마자 1인용 밥솥에 쌀을 안치는 것이 루틴이다. 씻고, 머리 말리고, 밥상을 피면 딱 30분이 지나 있다. 그는 매일 갓지은 밥을 먹는 것이 퇴근 후 낙이다.
반면 바깥 약속이나 회식이 많은 친구들을 '밥솥'을 포기해버렸다. 기껏 지어놔도 계속 밖에서 먹게 되니, 딱딱하게 눌은 밥은 골칫덩이다. 대신 즉석밥을 먹는다. 막연하게 '간편하니까'라고 생각한 뒷배경에는 '언제 집에서 밥을 먹을지 모르는' 자취생의 바쁜 일과가 있었다.
아예 심플하게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밥에 생각보다 무던하다. 처음에는 효율적이고 골고루 먹을 수 있다는 점에 끌리지만, 몇 번 먹다보면 의외로 물리기 쉽다. 한정된 경비로 메뉴를 구성하다보면 패턴이 정해져있다. 그러나 시간이나 노동 면에서 효율이 중요한 자취생에게는 가장 좋은 선택지다.
나 같은 경우는 '가마솥' 파였다. 3~4인용의 무쇠 솥에 밥을 지어먹는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방 공간 확보였다. 머리통보다 큰 전기밥솥은 원룸 주방에 항상 놔두기엔 너무 크다. 즉석밥은 비용이나 쓰레기가 부담스럽다. 구내식당만 이용하기엔 쉽게 물린다. 의외로 가마솥은 쌀을 안칠 때만 꺼내면 되고, 지은 밥은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놓으면 된다.
밑에 깔려있는 누룽지가 또 별미다. 잘 모아놨다가 간식으로 먹거나, 부모님이 오시면 누룽지탕을 끓여드린다. 솔직히 그 전까지는 누룽지를 사먹기만 해서 이것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생소했다. 매일 케첩만 먹어 토마토가 어떻게 생긴지 모른다는 미국 어린이들처럼, 내게 쌀과 누룽지는 별개의 요소였다. 이정도의 소소한 배움이 있다면 조금은 불편하게 살아봄직하다.
식재료는 어디에서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