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임종원씨의 아버지 임익철씨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아들의 삶과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유성호
아버지는 장남의 장례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직후 차려진 위패도 영정도 없는 분향소. "썰렁하게 국화꽃 다발만 크게 놓여있던" 그곳에서 아버지는 한참을 서성였다.
장례를 마치고 영정 없는 분향소를 헤맸다
"정말 너무나 궁금하더라고요. 왜 이렇게 유족들을 다 뿔뿔이... (중략) 유족 면담도 한번 없고 시신 처리 과정부터 장례까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 다른 유가족들은 어떤 처지에 있을까, 만날 수는 있을까, 그걸 알고 싶어서 갔는데 아무리 물어봐도 모르더라고요."
부쩍 더워진 날씨 탓에 비닐 천막 안은 텁텁한 공기로 가득했다.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회 앞 농성을 시작한 유가족들의 공간. 이태원참사로 장남 고 임종원씨(1987년생)를 잃은 임익철씨(66)를 지난 16일 만났다. 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은 임씨는 아들을 떠나보낸 직후 이야기부터 꺼냈다.
유가족임을 알아보고 말을 걸어온 정신과 의사부터 자신에게 '유족이십니까?'라고 물어온 외신 기자까지. 임씨는 자기같은 유족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또 물었다. 기자에게는 개인 연락처를 알려주며 혹시라도 알게 되면 전달을 부탁했다. 하지만 다른 유가족과 닿을 만한 회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임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정치권에서 요청한 면담 자리부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 기자회견까지. 유가족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질 때마다 빠짐없이 갔다. 처음에는 임씨를 포함해 10여 명 남짓 모였던 가족들은 어느새 1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임씨는 자신을 "보수적인 사람에 속한다"고 했다.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동남아시아, 중동지역 등 해외 근무만 여러 해. 은퇴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침이면 일어나 조간신문 6개를 펼쳐봤다. 임씨는 이태원참사 이후 한국의 모습은 그동안 알았던 '우리나라'의 모습과 많이 달라 의아했다. 159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임에도 유족들을 대하는 정부의 모습이 "이해가 안 갔다".
입시부터 취업까지 척척... 걱정 없는 아들이었다
▲ 이태원 참사 고 임종원씨 유가족 “진상규명 위해 긴 싸움 각오” ⓒ 유성호
"항상 아들의 불만은 다른 데서는 다 알아주는데, 집에서만 자기를 안 알아준다고. 하하."
그런 임씨도 아들 이야기를 할 때에는 답답한 기색이 사라졌다. 그는 이 말 끝에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어릴 적부터 재롱을 도맡으며 부모님을 배꼽 잡게 했던 장남. 학창시절에는 반장, 전교회장을 연이어 하고, 비싼 사교육 한 번 없이 입시도 잘 치렀다.
대학에 가서는 학생군사교육단(ROTC)으로 복무하면서도 방송반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취업 후에는 록 페스티벌 참가부터 와인동호회까지 섭렵했다. 늘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적극적인 성격은 늘 변함 없었다. 음악을 좋아해 직접 디제잉도 하고, 수시로 배낭여행도 떠났다. 누구보다 잘 놀고, 또 열심히 공부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살았던 사람'. 다른 희생자들과 함께 아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함께 나오는 소개글은 종원씨의 아내, 익철씨의 며느리가 붙여준 말이었다.
대학 시절 전자공학을 전공했던 종원씨는 10년 이상 한 대기업의 시스템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하며 경력을 쌓았고 결혼도 했다.
여러 관심을 두고 살았던 종원씨답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가지각색이었다. "종원이가 그동안 정말 잘 살았구나" 싶었던 순간. 황망한 마음에 코로나19를 이유로 들어 부득이 조문을 사양했지만, 아들을 찾아온 조문객들은 장례식장에 긴 줄을 섰다. 이틀씩 조문을 오기도하고, 장례를 마칠 때까지 자리를 지킨 이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종원씨가 졸업한 대학교 인근 호프집에서는 방송반 선후배들이 마련한 추모회가 열리기도 했다. 가족들도 함께 했다. 평소 사진 찍기를 유독 싫어하는 아들의 얼굴이 간간히 담긴 사진들을 모으고 모아 만든 추모 영상도 상영됐다.
"변함없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던 종원이."
영상 위로 종원씨를 기억하는 친구들의 다정한 말들이 지나갔다. 아버지는 사진 속 아들의 얼굴을 짚어가며 "얘가 종원이"라고 알려줬다. 키187cm의 100kg에 가까운 큰 체구. 쑥스러운 듯 웃으며 카메라를 피하는 종원씨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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