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로재궁에서 동문으로 가는 이르는 신로이다.
김재근
종묘 정전 보수 정비공사로 종묘 신주는 창덕궁(昌德宮) 선인전(宣仁殿)에 모셔져 있다. 공사가 끝나고 신주를 다시 모셔 오고 내 후년쯤에야 다시 종묘제례가 열릴 듯하다. 신주가 종묘로 다시 봉안되는 행사가 크게 열릴 것이니 꼭 구경하길 권한다. 조선 영조 이후 처음 있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종묘제례는 문화 충격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교는 종교가 맞다고. 왕은 목사님, 신부님, 스님과 엇비슷했다. 정치의 수반이면서 제사장이었다. 권력은 제사에서 나왔다. 가문의 종손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성균관과 향교의 대제, 서원의 제례, 대단한 가문의 불천위 제사, 일반 가정 제사의 절차와 그에 따른 의미도 크게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경국대전 제사 규정에, 6품 이상은 3대 봉사 7품 이하는 2대 봉사 서민은 부모만 모시면 된다고 하였다.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너도 양반 나도 양반이 되었다. 그리고 매년 두 자릿수의 제사를 지내야 양반이라 할 수 있었다. 경쟁은 대상을 키우고 규모를 부풀렸다, 종묘제례에 버금가도록. 공직 냄새도 못 맡으신 제 선친까지도 4대를 받들어 모시기에 이르렀다.
부인하려 해도 때맞추어 제사를 지내고 가을이면 벌초를 하고 시제를 지내는 한 유교는 지금도 내게 진행형이다. 나의 의식 일부를 장악하고 있고 때로는 행위의 지침이 되기도 한다. 오래된 일은 쉽게 지워지지 않나 보다.
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멋진 숲이라니
종묘제례를 주관하는 전주이씨 대동회 종약원이나 문화재청이 종묘를 어떻게 여기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종묘를 좋아하고 자주 찾는 건 다른 의미다. 삶의 가치를 형성하는 근원을 음미할 수 있고, 여러 개의 문화유산 중 하나이고, 무엇보다 숲이 멋지다. 원시림이 주는 청량감은 무엇보다 좋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처럼 멋진 숲이라니. 창덕궁 후원에 비할손가. 건축과 조경과 자연이 어울려 편안하고 아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