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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독립운동 연구한 역사학자가 다녀온 '임정로드'

[서평] 박환 교수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현장을 가다>

등록 2023.06.22 10:36수정 2023.06.2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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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30 청년들을 이끌고 서대문구에 위치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상하이부터 충칭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었던 고난의 여정을 살펴보고 난 뒤 청년들에게 소감을 묻자 "당장 중국으로 떠나고 싶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박물관에 박제된 사진으로만 볼 게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이 누비던 현장에 직접 서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미 수차례 중국 내 임시정부 사적지(임정로드)를 답사하고 온 나 역시도 그런 충동이 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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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의 현장을 가다> 표지 ⓒ 선인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물관에 전시된 사진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중국 여행 봉쇄가 풀리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중국으로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부추기듯 때마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현장을 안내하는 답사기도 출간됐다. 수원대학교 사학과 박환 교수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현장을 가다>라는 책이다.

한 역사학자의 임정로드 답사기


저자는 한평생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에 매진한 역사학자이다.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김좌진 평전>, <강우규의사 평전>, <독립군과 무기> 등 독립운동 관련 서적만 수십 권을 펴냈다. <만주지역 한인유적답사기>, <러시아 한인 유적답사기> 등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에 대한 답사기도 여러 권이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임정로드 답사 열풍이 불면서 관련 답사기도 여럿 출간된 바 있다(이 서평을 쓰는 기자 역시도 국내 최초 임시정부 투어가이드북 <임정로드 4000km> 출간 작업에 참여했다). 수많은 답사기를 뒤로 하고 저자는 왜 굳이 새로운 답사기를 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역사학자로서의 의무감'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최근 임시정부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학계의 전문안내서가 많지 않음을 인지하게 되어 감히 용기를 내게 되었다. 또한 그동안 수많은 초중등교사들, 일반시민, 학생들과 함께 한 경험과 감동들을 대중화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아울러 답사의 편린들을 모아 정리해두면 후학들과 앞으로 탐방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판단하였다. 책을 간행한 동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머리말 중

저자의 말대로 한평생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역사학자로서 자신이 직접 현장을 누비며 경험한 것들을 대중들과 공유하고픈 마음이 집필을 결심하게 된 동기였다. 그 과정에서 근거 없는 '썰'에 기반한 잘못된 지식들을 바로잡고픈 의무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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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복원 전 충칭 연화지 청사의 모습(좌)과 복원 후 정비된 모습(우) / 복원 전 사진은 박환 교수 사진, 우측 모습은 2013년 기자 촬영. ⓒ 박환, 김경준


그래서 여타 답사기와 비교했을 때 이 책은 상당한 무게감을 자랑한다. 저자 개인의 연구 성과 뿐만 아니라 학술논문에 게재된 최신 연구 성과 등을 반영하여 장소에 대한 엄밀한 고증과 임시정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추구한다. 보다 심화된 학술 지식을 갈구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픈 까닭이다.

특히 1992년 첫 답사 이래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틈만 나면 중국 대륙을 발로 누비며 찍었던 현장 사진들을 대거 수록함으로써 임정로드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도록의 성격도 갖고 있다.

광복군과 함께 했던 답사의 추억

1992년 8월 24일, 저자의 기억이다. 이날 충칭 연화지 38호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앞에 섰다. 임시정부의 경위대장으로 활동했던 광복군 출신 윤경빈 애국지사(2018년 별세)와 함께 한 길이었다.


환국 후 수십 년만에 자신이 청춘을 바쳤던 땅에 돌아온 노병(老兵)은 임시정부 청사에서 옛 기억을 더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에 저자 역시 가슴이 뭉클했다고 고백한다.
 
"이곳에서 활동했던 윤경빈 선생은 옛 추억이 생각나는지 눈시울을 붉히며 당시의 상황을 우리 일행들에게 생생하게 설명하여 주었다. '임시정부의 건물 앞에는 당시에는 큰 도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도로가 보이지 않는군요. 임정 건물 입구 입구문에는 광복군 초병이 두 사람 서 있었으며 쇠로 만든 문에는 철판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 221쪽

이처럼 원로 애국지사와 함께 걸으며 현장에서 듣고 본 이야기들은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대한 생생한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날 역사적인 한중수교가 이뤄졌다. 저자는 이 또한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 말한다.
 
"연화지 청사에는 지금도 임정요인들과 광복군 인사들이 독립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그들이 문을 열고 박선생하고 부를 것 같은 착각에 쌓이기도 하였다. 이역만리 이곳 중경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애쓰신 선열들의 고귀하신 투쟁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었다." - 221쪽

한중수교가 이뤄지기도 전에 임정로드를 밟고 온 개척자로서 저자는 임시정부 청사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기 전의 모습들도 공개한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먹고 자며 국무회의를 열던 연화지 청사는 해방 후 여관·학교·주택 등으로 쓰이면서 제 모습을 잃어버린지 오래였다.

그러나 한중수교 후 한국의 독립기념관과 충칭시 대외인민우호협회가 복원 협정을 체결하면서 1995년 8월 제 모습을 되찾았다. 이후로도 독립기념관은 꾸준히 충칭시 정부와 협조하여 건물 보수 공사와 전시 교체 등을 해오고 있다.

저자는 임시정부 청사를 복원하기 위해 뜻을 모았던 이들의 노력을 강조하면서 보다 많은 시민들이 임정로드로 떠났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낸다. 임정로드를 온전히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과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독립투사들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한중관계 복원을 위한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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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중국 답사 당시 광복군 윤경빈 지사와 함께 한 저자(왼쪽) ⓒ 박환


최근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발언으로 불거진 '내정간섭' 논란이 윤석열 대통령의 맞불 발언으로 인해 더욱 격화된 모양새다. 급속도로 얼어붙은 한중관계를 보면서 혹시 이로 인해 몇 년 만에 열린 하늘길이 도로 막히지는 않을는지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든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말이 있다. 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과 중국이 서로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두 나라는 과거 함께 항일전선에서 싸웠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 당국 역시 중국 내 한국 독립운동 사적지 복원과 보존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권하고 싶다. 한국과 중국의 정치인들이 함께 임정로드를 걸으며 과거의 기억을 공유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기약할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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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 연화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2020년 1월 14일 기자 촬영) ⓒ 김경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현장을 가다

박환 (지은이),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2023


#박환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정로드 #선인 #광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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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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