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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발언, 사교육업체 '불안마케팅' 할 수 있게 해줬다"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록 2023.06.26 11:23수정 2023.06.2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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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교육개혁 보고를 받고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지시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수험생과 학부모 등 교육계가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 수능을 5개월 앞두고 무슨 이야기냐는 것이었다.

교사 출신으로 국회 교육위에서 활동하는 강민정 의원은 이 사안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 지난 22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강 의원과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날벼락 치듯 던져진 대통령의 말... 사교육 시장 '불안 마케팅'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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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에 관한 대정부질문에서 질의하고 있다. ⓒ 남소연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수능에 대해 언급한 게 논란이잖아요. 오늘(22일)로 딱 일주일이 지났는데 한 주간 흐름 어떻게 보고 계세요?

"윤석열 대통령의 말 한마디 이후 대통령실, 교육부 장관, 국민의힘에서 많은 해명이 나왔습니다. (해명을 통해) 대통령을 두둔하면서 오히려 수험생들이나 학부모들한테 혼란과 불안을 가중시켰지요. 수능은 역린과도 같은데, (이 발언 논란이) 이해관계자들에겐 만 5세 조기 입학보다 훨씬 더 뜨거운 문제로 다가간 것 같습니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얘기를 던져서 혼란을 가중시켰죠."

- 수능 5개월 앞두고 지침을 급격하게 바꾸면 안 되지 않나요?

"고등교육법 34조에 보면 수능이라는 건 대학 입시를 위한 시험입니다. 보통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고등학교들은 1학년 때부터 어떻게 입시 전략을 짤지 준비합니다. 때문에 법에 수능 관련해서 출제 방향이나 시험형식, 과목 등을 4년 전에 예고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적혀있어요. 그리고 이를 바꾸려면 대통령이나 교육부 장관이 혼자서 바꾸는 게 아니라 반드시 사전에 공청회를 하든가 관계자들의 의견을 꼭 수렴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문제를 던져버렸기 때문에, 수험생들에게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 왜 지금 이걸 얘기했을까요?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실 대통령이 이런 건 처음도 아닙니다. 예를 들면 작년에 '초등학교 만 5세 입학' 얘기가 나왔는데, 이것도 사전에 제대로된 논의가 있었다거나 공청회, 의견 수렴은커녕 정부 내에서도 논의 과정 없이 확 던졌다고 봅니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교육은 아이들과 직접 연관돼서 더 충분한 사전 검토가 필요합니다. 교육은 백년지계라고 말합니다. 백년 이후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도 있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보면 교육과 관련된 문제를 갑자기 날벼락 치듯 불쑥 던지는 건 옳지 않습니다."

- 윤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시점이 문제일까요?

"이건 철저하게 시점의 문제입니다. 교육과정 내에 성취기준이 있고 이 성취기준에 맞춰서 시험 문제를 내는 것이 원래 맞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교육과정 내에서 시험 문제를 안 내도 되게 하는 법이 있습니다. 이른바 공교육정상화법이라고 하는데, 사실 공교육정상화법은 학교에서 내신 시험 문제를 낼 때와 대학별고사에서 시험 문제를 낼 때 교육과정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내용의 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수능이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재작년에 수능도 교육과정 내에서 내야지, 벗어나서 문제를 내면 안 된다는 내용의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국회 교육 상임위에서 이 법을 교육부와 같이 심의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교육부가 '우리는 교육과정에서 문제를 낸다. 이른바 킬러 문항이라는 건 없다'며 제 법안을 반대했습니다. 그렇게 법안이 처리가 안 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통령이 교육과정과 킬러 문항을 이야기하니 그 다음 날 바로 교육부의 입장 바뀌었습니다. 대통령의 말을 옹호하기 위해서라도 입장 바꾼 거라고 생각합니다. 공교육 과정 안에서 문제를 내야 한다는 건 맞는 말이기에 그 말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겠습니다."

- 만약 대통령이 이 같은 방침을 2028년 수능부터 적용하라고 했다면, 문제가 없나요?

"그래서 제가 작년에 수능을 교육과정에서 내라는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자고 했습니다. 그걸 통과시키고 적어도 4년 예고제에 맞춰서 거기에 맞는 당해 연도에 적용하자고 하면 문제가 없었지요. 당장 11월에 수능을 보는데, 출제자도 뽑고 출제 준비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험 출제에 구체적으로 '이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치고 들어오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되면 누가 수능을 출제하겠다고 나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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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대통령의 발언 때문에 오히려) 사교육이 늘어날 거라는 얘기도 있던데.

"킬러 문항이라고 학교에서 안 배우는 대학 수준의 문제를 내면 학교에서 못 배우니까 학원을 찾게 됩니다. 문제는 올해 볼 입시가 불안해졌다는 겁니다. 그러니깐 오히려 거꾸로 불안 마케팅을 사교육업체들이 할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갈팡질팡하니 부모나 수험생 입장에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거예요. 킬러 문항을 없애는 게 사교육을 완화시키는 역할은 하지만, 사실 사교육이라고 하는 건 근본적으로 수능 난이도 때문에 생긴 건 아닙니다. 대학 서열화가 너무 심하기 때문입니다. 

입시 수험생보다 대학 정원이 더 많은데도 사교육이 줄어들지 않는 건 단순히 대학 수능의 난이도 문제만은 아니란 겁니다. 대학 중 상위권을 가려고 하는 것 때문에 근본적으로 사교육 해결이 안 되고 있습니다. 수능도 쉬우면 쉬운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상대평가로 줄 세우는 건 바뀌지 않았습니다. 킬러 문항을 없애는 것만으로 사교육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 사교육을 없애려면 EBS에 많이 투자를 해서 질 높은 교육 콘텐츠를 누구나 보게 하면 될 텐데, 정부 측 주장처럼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면 EBS 경영에도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

"수신료 안에는 KBS 재정 예산만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EBS 예산도 들어가 있습니다. 분리 징수를 해서 수신료 징수율이 확 떨어진다면 EBS도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EBS 문제 뿐만 아니라 (당정 측이) 앞뒤가 안 맞는 얘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 발언을 하고 그 이후 당정협의회를 했어요. 우리나라 사교육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게 자사고, 특목고입니다. 거기 가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을 준비하잖아요. 원래 자사고, 특목고를 2025년에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완전히 백지화하고 자사고, 특목고를 그대로 남겨두겠다고 합니다. 대통령실에서 얘기한 사교육 경감이 진정성 1도 없는 얘기가 된 겁니다. 자기들 스스로 모순을 보여준 겁니다."

"대학 서열화 문제 해결해야 경쟁 사라져... 국가가 과감한 투자해야"

- 변별력 가리기 위한 킬러 문항을 없애기로 한 건 어떻게 보세요?

"저는 킬러 문항을 없애자는 법안까지 냈습니다.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 이른바 킬러 문항을 없애는 건 필요합니다. 그런데 킬러 문항을 없앤다고 해서 사교육이 경감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부분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정말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는 깊은 교육적 고민에서 이 말씀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킬러 문항이 없으면 변별력이 없어진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교육을 모르는 사람들의 얘기입니다. 대학 수준의 문제를 안 내면 변별력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고등학교도 그렇고 심지어 초등학교도 시험 범위 안에서 어렵게 낼 수도 있고 쉽게 낼 수도 있습니다. 학교 교육과정에 없는 그런 높은 수준의 문항을 내고 킬러 문항을 내야지만 변별력이 생긴다고 하는 건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 한국 교육의 근본 문제는 '경쟁'입니다. 경쟁을 완화할 대책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요. 

"경쟁을 완화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겠지요. 사교육 문제도 그걸 해야지만 해결됩니다. 그러려면 대학 서열화를 완화시키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국가가 과감하게 대학에 재정을 투입해서 교육의 수준을 비슷하게 만드는 일들을 하면 치열하게 1점 때문에 등급이 달라지는, 이런 식의 목숨을 건 경쟁을 안 해도 될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이 300개가 넘으니 한꺼번에 할 순 없고 일단 전국의 국립대학이라도 무상교육을 하고 훨씬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합니다. 지방에 있는 대학을 가서도 수업료나 학비 걱정 없는 여건을 국가가 만들어 주고, 지방국립대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국립대학교 안에서나마 서열이 완화되는 효과가 증명되어야 합니다. 금방 대학이 평준화되지는 않겠지만 계속 그런 노력과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겠지요."
#강민정 #수능 #킬러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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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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