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포국수 트럭 사진
박정선
그런저런 이유로 궁금해 구포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구포는 낙동강 인근 부산 북구에 있는 동네로, 경부선 KTX 열차가 서는 구포역이 있어 그 열차를 타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지나쳤을 것이다.
옛날에도 교통의 요지여서 배가 많이 드나들어 지명에 포(浦)가 들어가고, 범방산이라는 구포의 산줄기가 낙동강에 고개를 쭉 내민 거북이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거북이 구(龜) 자를 써서, 구포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구포에 신혼살림을 차렸던 엄마가 그때도, 지금도 가끔 가는 시장이 있는데, 그 구포시장의 역사도 400년이 넘는다고 한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미군이 공급한 밀가루가 풍족해 시장 주변에서 국수를 만들어 말렸고, 그게 배고픈 피난민들을 먹여 살리면서 '구포국수'로 유명해졌다고 하니 국수 또한 역사가 짧지 않았다.
구포국수는 짭짤하고 쫄깃한 것이 특징인데, 낙동강 하류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는 길목이니 불어오는 바람에 염분이 많아 그렇단다. 한강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에게는 그 짭짤한 맛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진 것이라고. 이 사실도 이번에 기사를 쓰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엄마와 셋이 구포시장 구경도 하고 구포국수 한 그릇씩 맛보며 소주 한 잔 따라드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서 아버지께 구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구포국수에 얽힌 추억은 없는지 여쭤보는 시간도 가졌을 텐데.
기사를 쓰다보니 엄마 이야기는 많이 알면서 아버지 이야기는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와닿았다. 살아계실 때는 왜 이런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구포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은 그만큼 아버지와의 대화가 없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깨닫는 계기가 되어, 여자만 넷인 집에서 아버지가 겪었을 외로움의 무게가 느껴졌다.
아버지께 해드렸던 김치말이 국수
그래도 아버지가 면을 참 좋아하셨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이유가 구포국수를 먹고 자라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아버지를 위해 딱 한 번 김치말이 국수를 해 드린 적이 있었다.
점심은 항상 면을 드셨던 아버지였고, 나도 먹고 싶어 겸사겸사 만든 것이 김치말이 국수였다. 오래전 홍대 앞 고깃집에서 친구가 시켜서 처음 먹어봤던 김치말이 국수. 한겨울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웠지만 맛있었던 기억이 남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만든 김치말이 국수는 멸치육수에 간을 한, 좋게 말하면 건강한 맛이었지만 입에 착착 감기던 그때 그 맛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그 뒤로 김치말이 국수를 만들어 먹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물론 아버지는 괜찮다며 한 그릇 다 비우셨지만.
그러다 작년인가, 사 본 적 거의 없던 시판 냉면 육수에 김치만 썰어 넣고 면을 말아 먹었는데 '아니, 이 맛은?' 싶은, 바로 그 맛이 나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파는 육수가 싫다고 안 드시지만, 라면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냉면 육수를 사 와서 입에 딱 맞게 만들어 드렸다면 참 맛있게 드셨을 텐데....
지금 제일 맛있는 열무 김치말이 국수
아버지께 만들어 드린 것은 배추김치로 만든 국수였지만, 요즘엔 열무김치로 시원한 김치말이 국수를 만들 수 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시장에서 열무와 얼갈이를 사서 김치를 담기 때문이다. 줄기가 가늘고 연한 것을 사서 담으면 아삭거려 질기지 않게 끝까지 먹을 수 있다. 그 열무김치가 지금 우리 집 김치냉장고에서 맛있게 익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