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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열일곱 살, 직업은 대장장이입니다

제도교육으론 우리집 세 아이 다 초등학교 졸업... 공부 흥미없어 자기 일 찾아 밥벌이

등록 2023.07.03 21:22수정 2023.07.0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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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문화교육원 단조반에서 수업 중인 17세 대장장이 이평화군.
전통문화교육원 단조반에서 수업 중인 17세 대장장이 이평화군. 이규홍
 
아들은 열일곱 살, 직업은 대장장이다(17세는 현 정부의 나이 계산법을 따른 것이다). 열세 살에 충북 보은의 '보은대장간'에서 대장장이 일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어언 4년째 '쇳밥'을 먹으며 수련 중이다.

보은대장간 유동렬 선생 밑에서 이년쯤 공부하다 유 선생의 추천으로 전통문화대학교 부설 전통문화교육원에 들어가 철물 단조 고급 과정을 수료했다. 드디어 국가가 인정한 진짜 대장장이가 된 것이다.

철물 단조 과정 수료 후 지금은 철물 장석 과정으로 편입해 공부를 이어가면서 집 뒷마당에다 허술한 작업장 하나 지어놓고 교육원 나가지 않는 날은 혼자 땅땅거리며 쇠를 두드리고 있다. 요즘은 유치원 어린이들이 체험 학습에서 쓸 수 있는 미니 호미를 만들어 팔아 용돈벌이도 하고 있다. 

제 밥벌이 하는 우리집 아이들

우리 집 세 아이 모두 제도 교육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궁둥이 붙이고 하는 공부엔 저나 나나 흥미가 없어 다들 학교 밖에서 배움을 찾기로 합의를 보았으나 그동안 뭘 배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어디 나가 '줘 터지지' 않고 제 밥벌이는 하고들 있으니 아이들 교육을 말아먹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큰딸은 일찌감치 짝을 만나 아직 서른도 안 된 나이에 딸을 둘이나 낳고 잘 살고, 둘째는 집에서 농사도 짓고 멀지 않은 직장에도 다니면서 아비 호주머니 궁할 때마다 통장에 용돈을 꽂아주니 난 살판났다.

아들이 대장장이가 된 건 무슨 거창한 동기나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그때 그 일이 눈에 띄었고 재미 있어 보여 시작하게 된 것일 뿐이다.


어른들의 못된 습관 중 하나가 틈만 나면 목표를 정하고 목적 없는 행동은 쓸데없는 짓이라 치부하는 거다. 자신들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겐 꼭 안 해도 될 말을 정기적으로 진지하게 해댄다.

'인마,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되는 거야. 사람이 목표가 있어야지. 그렇게 빈둥거릴 시간 있으면 책이라도 한 장 더 보고 문제라도 하나 더 풀어.'


그런 분들에겐 빈둥거림의 유용함과 목적 없는 놀이에서 얻게 될 창조성에 관해 열변을 토하고 싶다.
  
 평화군이 전통문화교육원 수업 중에 만든 작품
평화군이 전통문화교육원 수업 중에 만든 작품이규홍
 
이평화군의 작품 평화군이 전통문화교육원 수업 중에 만든 작품
이평화군의 작품평화군이 전통문화교육원 수업 중에 만든 작품이규홍
 
이평화군의 작품 평화군이 전통문화교육원 수업 중에 만든 작품
이평화군의 작품평화군이 전통문화교육원 수업 중에 만든 작품이규홍
 

아들이 아직은 쇠 다루는 일이 재미있어 겁 없이 망치를 휘두르고 있지만 언제고 쇳내가 지겨우면 또 다른 길을 걷게 되리라 생각한다. 누군가 정해준 길을 생각 없이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는 건 재미없는 일이라고 나도 여기고 있으니 아들이 제 흥미를 따라 장차 무얼 선택하건 내 알 바 아니다. 잘 되면 고마운 일이고 설령 실패한다 해도 다음엔 뭔데 그러고 지켜볼 밖엔.

작년부터 아들을 데리고 다큐멘터리를 하나 찍고 있는데 요즘 녀석이 바빠지면서 눈치만 보고 있다. 영상 제작의 목적은 간단하다. 학교 밖에도 배움의 길과 살길은 얼마든 있으니 선생들과 부모의 꼬임에 속아 목숨 걸고 '쎄빠지게' 공부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는 걸 아이들에게 말해주기 위함이다.

더구나 네 의식 속에 주입된 성공한 삶이라는 게 이 사회가 조작해 낸 사기일 수도 있으니 그것에 목숨을 거는 것이야말로 정말 하지 말아야 할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다른 길도 있다

매년 국내 청소년 자살률이 늘고 있다. 청소년 사망 원인 역시 수년째 '극단적 선택에 의한 사망'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고나 질환에 의해 세상을 떠나는 청소년보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청소년이 매년 더 많다는 의미다.

통계청이 발표한 '아동 청소년 삶의 질 2022 보고서'에 따르면, 15~17세 자살률이 10만 명당 9.5명이라고 한다. 2022년 4월 현재 우리나라의 고교생 숫자가 135만 명쯤이니 이들 중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이 한 해에 128명을 넘는다. 생각만 하고 시도하지 않은 아이들(12.7%), 시도했다가 실패한 아이들(2.2%)은 뺀 수치다. 고등학생만 이렇다는 것이다. 초·중학생을 더하면 매년 이태원 참사와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이 땅에서 반복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왜 어른들과 이 세상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조용할까.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부모, 또래와의 관계에서 겪는 문제 등이 자살을 유도하는 급성 위험 요인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온라인상에서 발생하는 따돌림과 언어폭력, 협박 등의 문제도 극단적 선택을 촉발하는 급성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성적이든, 대인관계든 나를 힘들게 하는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려면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아이들도 알아야 선택의 폭이 조금이라도 커지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재밌게 놀려고 태어났지, 세상 온갖 풍파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지 않은가?
 
미니 호미 만들기 자기 작업장에서 주문 받은 미니 호미를 만들고 있는 평화군
미니 호미 만들기자기 작업장에서 주문 받은 미니 호미를 만들고 있는 평화군이규홍
 
평화군의 작업장 평화군이 지인으로부터 주문 받은 호미를 만들고 있다.
평화군의 작업장평화군이 지인으로부터 주문 받은 호미를 만들고 있다.이규홍
 
요즘 대통령이 나서서 수학능력시험이 어쩌고 '킬러 문항'이 어쩌고 되지도 않는 논리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핵심을 한참 벗어난 헛다리 짚기에 더욱 암담함을 느낀다.

다음 세대들은 학벌을 내세우지 않고도, 청춘을 바쳐 스펙을 쌓지 않고도 자기 분야에서 행복하게 일하고 대접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대통령이라면 그만한 생각의 크기는 갖추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소리치고 싶다. 아이들아, 우리는 죽어라 공부만 하고 일만 하려고 이 세상에 온 게 아니란다. 그러니 얘들아~ 같이 놀자~ 이 말을 아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광장에도 실렸습니다.
#진안군 #월간광장 #홈스쿨링 #대장장이 #이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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