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기억이다
서해문집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사대문 안에 있는 서울 도심부의 변화 과정을 기록했고 2부에서 사대문 밖의 외곽부의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3부는 '공간의 명암'이라는 주제로 집, 지하공간, 하수도, 도축장 등 주요 도시 공간을 비춘다.
12명의 연구자가 쓴 글을 모은 만큼 여러 관점과 대상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목차를 살펴보고 흥미를 이끄는 지역이나 주제만 읽고 덮어도 된다. 필자는 완독을 했지만 여러 주제 가운데서도 도시 발전 과정 가운데 밀려난 도시 공간에 주목했다. 첫 번째는 빈곤층 주거지의 변화이며 두 번째는 비인간동물이 도살되는 도축장의 역사다.
도시 확장에 따른 주거지의 변화
도심지 공간의 변화는 집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일단 도시 활동이 시작되려면 사람이 거주할만한 집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2023년 현재도 여전히 주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끊임없이 갈등 중이다. 이는 최근의 일이 아니다.
100년 전인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농민들은 농촌에서 생계를 잃고 도심지 서울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집도, 일자리도 없는 상태로 말이다. 다행히도 도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도심지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쉬웠다. 이농민들은 도심 인근에 토막집을 짓고 생계를 이어 갔다. 이들을 '토막민'이라 부른다.
토막민 수는 꾸준히 늘어나 1928년 1143호 4803명이었던 것이 일제 말기인 1942년에는 7426호 3만 7026명까지 불어났다.
- p.290
당시 식민 당국은 급격히 늘어나는 토막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하지만 고작 마련한 대책이라는 건, 경성부 바깥에 집단주거지를 설정하고 토막민을 그곳으로 내쫓은 것이 전부였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로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 빈손으로 서울에 올라온 사람들은 도심 하천 변이나 구릉지 등에 자리 잡았다.
무허가 판잣집 등 불량 주택의 수는 18만 7000채에 이르렀다.
- p.292
광복 후 청계천 변에는 무허가건축물이 급증했으며, 이는 식민지 시기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 p.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