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증거 자료로 제출된 업무 지시 카카오톡 대화 기록 중 일부.
오마이뉴스
광주지법 민사21단독(최윤중 판사)은 6월 13일 광주방송이 이씨에게 퇴직금 1700여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2014년 3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5년 10개월 간 광주방송 노동자로 일했으니 퇴직금을 받아야 한다"는 이씨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졌다.
핵심은 업무의 종속성이다. 얼마나 사용자의 종속적인 지휘·감독을 받으면서 일을 했는지 여부다. 조연출이란 말이 드러내듯, AD는 영상 제작, 촬영, 편집, 스튜디오 진행 등 전 제작 과정의 업무를 보조하는 인력이다. 대부분 방송사에 상주하면서 PD나 기자의 지시에 따라 일한다. 이들에겐 촬영·편집 방향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방송사들은 AD를 프리랜서로 채용한다. 이번 판결은 이 관행이 부당하다는 걸 확인한 셈이다.
이씨는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 회사의 태도였다고 했다. 그에게 광주방송의 반박 서면은 거짓투성이로 보였다. 광주방송은 이씨가 "평균(4주)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한 근로자"라고 했다.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는 퇴직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회사는 또 사내에 AD라는 공식 직책은 없고 출·퇴근 관리도 하지 않았으며, 이씨와 종속적인 지휘·감독 관계도 맺지 않았다고 밝혔다.
새벽 6시께 사전녹화가 시작되는 아침 프로그램을 내리 맡았던 이씨는 매일 혹은 격일로 새벽 4시께 출근해 오후 1~2시까지 일했다. 그 다음 날에도 보통 점심시간 후 출근해 밀린 영상 편집 업무를 봤다. 기자들의 감독 아래 예고영상, 자료영상, 코너영상을 만들었고, 종합편집이 이뤄질 땐 편집실에 상주하며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수정 지시를 이행했다. 다행히 이씨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5년 가량의 카카오톡 업무 기록을 대부분 갖고 있었고 법원에도 제출했다. 이씨는 "'주 15시간 미만'은 정말 불가능한 말"이라고 했다.
"한쪽이 그렇게 말했다고, 없는 사실이 '사실'이 되나?"라고 말하던 이씨는 "그러나 그게 되더라"면서 노동청 얘길 꺼냈다. 이씨가 법원보다 먼저 찾은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2020년 7월, "이씨가 주 15시간 이상 일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며 퇴직금 미지급을 무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노동청은 이씨가 법원에 낸 증거와 같은 자료를 제출받은 터였다. 검찰도 사건을 더 들여다보지 않고 무혐의로 처분했다.
이씨는 5년 10개월 동안 어떤 계약서도 써 본 적이 없었다. 근로계약서 미작성 문제를 수사한 노동청은 "회사에 불법의 고의가 없다"고 무혐의로 종결했다. "결과적으로 이씨를 근로자로 볼 수 있다 해도, 광주방송이 이씨를 근로자로 보고 채용한 적이 없고 이씨도 프리랜서임을 인식하고 일을 시작했고 근로계약서 미작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적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 40시간은 일했는데 15시간 일했다 하고, 근무시간에 자리에 없으면 문제가 됐는데 출·퇴근 관리를 하지 않았다 하고, AD라고 제작진 명단에도 적혔는데 AD가 아니라 FD였다고 하고, 기자들 지시를 받으면서 방송을 편집하고 촬영을 보조했는데 지휘·감독이 없었다고 말한다. 내 근무 모습을 지켜보고 지시도 했던 직원들이 방송사에 남아 있다. 아무리 소송이지만 이런 기본조차 부정해도 되나?"
이씨는 기초 사실부터 증거를 찾아가며 싸워서 입증해야 하는 현실에 "지난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며 "큰 방송사와 법적으로 다투는 프리랜서들이 모두 겪는 문제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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