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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북은 독립유공자 불인정" 보훈부 논리면... 교과서도 문제

[아이들은 나의 스승] 윤석열 정부, 이제 독립운동가까지 갈라치기하나

등록 2023.07.07 13:24수정 2023.07.0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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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식 보훈부장관이 5일 오후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열린 '고 백선엽 대장 동상 제막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나라가 십수 년을 거슬러 이명박 정권 시절로 회귀하는 줄로 알았더니, 반세기 전 박정희 유신 시절로 퇴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친북 인사는 독립유공자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가짜 독립유공자의 서훈을 박탈하겠다는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의 생뚱맞은 방침에 한 아이가 조롱하듯 말했다. 독립유공자 서훈의 영예와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명분에 아이들조차 콧방귀를 뀌는 형국이다. 가짜 독립유공자 선별 기준이 고작 '친북 성향 여부'라는 게 황당하다는 이야기다.

오해할까 싶어 전제해둔다. 가짜 독립유공자를 가려내는 건, 국가보훈부의 중요한 업무로서 당연하며 기꺼이 박수를 보낼 일이다. 다만 일제강점기와 좌우 대립이 극심하던 해방 직후 공산주의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가짜 독립유공자라며 서훈을 박탈하는 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다.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에 빚진 역사는 어쩔 건가

공산주의 독립운동을 배제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우리 독립운동사의 반쪽을 통째로 날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끌차의 힘으로 전개됐다는 건 이미 우리 사회의 보편적 상식이다. 1920년대 후반 일제에 타협하지 않은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손 맞잡은, 이른바 '민족유일당 운동'은 수능에서도 거의 해마다 출제될 만큼 역사적 의의를 인정받고 있다.

현행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공산주의의 독립운동을 별도의 주제 단원으로 설정해놓고 있다. 조선공산당 초대 비서였던 김재봉의 어록이 그의 생가 사진과 함께 교과서에 당당히 실려 있을 정도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여성 트로이카'라고 불리는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의 활약상도 상세히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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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 초대 책임 비서 김재봉(1890~1944) ⓒ 안동대박물관 편 <근대 안동>

 
일제강점기 혁명적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은 물론, 백정들의 신분 해방을 부르짖은 형평운동과 소년운동, 여성운동 등은 모두 공산주의에 이념적 기반을 두고 있다. 사회적 차별에 맞서 싸운 그들의 저항이 곧 독립운동의 한 축이었다. 저 유명한 6.10 만세운동도, 광주학생독립운동도 숱한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에 빚졌다.

일제에 맞선 공산주의자들의 저항이 워낙 거세어, 그들을 색출해 처단하기 위해서 일제가 만든 법이 1925년에 제정된 '치안유지법'이다. 일본에서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식민지 조선에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당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학살하고 조선공산당을 여러 차례 강제 해산시킨 악법 중의 악법이다.


참고로 '치안유지법'의 제1조는 "국체(천황제)를 변혁하고, 또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사를 조직하거나, 또는 그 사정을 알면서 이에 가입하는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고 적시돼 있다. '반공'이 목표임을 명토 박고 있는 셈이다. 이는 항일독립운동에 있어 공산주의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가를 방증한다.

독립운동을 벌인 공산주의자를 때려잡던 '치안유지법'은 해방 직후 '국가보안법'으로 재탄생했다. 당시 '국가보안법'은 제주 4.3과 여순 사건을 계기로 제정돼 이승만 정권이 정적을 제거하고 숱한 민간인을 학살하는 데 활용된 희대의 악법이었다. 공산주의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에 의해서, 해방 후엔 이승만 정권에 의해 치도곤당해야만 했다.

정부의 다른 꿍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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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6월 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명색이 국가의 보훈을 책임진 장관이, 웬만한 고등학생들도 다 아는 이런 초보적인 역사적 상식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뜬금없이 '친북' 운운하며 공산주의 독립유공자를 배제하려는 건 다른 꿍꿍이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대놓고 "항일운동을 했다고 무조건 OK가 아니"라며 "공산주의 혁명에 혈안이었거나 기여한 사람을 독립유공자로 받아들일 국민은 없다"고 강조했다.

백 보 양보해서 그의 말은 일제강점기 공산주의 독립운동은 문제 삼지 않겠지만, 해방 후 좌익 계열에 섰다면 독립운동 이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다. 공산주의자로서 독립유공자로 대우받으려면 해방 후 좌익에서 우익으로 '변절'해야 한다는 뜻일까. 미소 냉전과 극심한 좌우 대립 속에 그들에게 해방은 또 다른 시련일 뿐이었다.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친일파들은 단죄되기는커녕 중용됐고, 당시 귀국한 노회한 정치인 이승만조차 그들을 감쌌다. 그 와중에 38도선 이남의 공산주의자들은 순식간에 적으로 규정돼 척결 대상으로 낙인찍혔다. '반공'이 맹위를 떨치면서 해방 후 생존을 모색하던 친일파들은 애국자로 돌변했고, 6.25 전쟁은 민족을 배반한 그들의 죄과를 깨끗이 씻는 기회가 돼줬다.

김백일과 이응준, 백선엽, 김창룡 등 지금 서울과 대전의 국립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숱한 친일파들이 이렇듯 참담한 역사를 증언한다. 반면 불세출의 독립운동가인 의열단 방백 김원봉, '말모이'의 주인공인 국어학자 김두봉, 언론인이자 소설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 등은 북한 정권 수립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버림받았다. 그들이 나고 자란 고향을 등지고 월북한 이유에 대해선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친북' 성향의 가짜 독립운동가 색출에 혈안이 된 지금, 해방 직전에 세상을 떠난 이육사와 홍범도 등이 차라리 복을 받았다고 해야 할 성싶다. 두 분은 온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독립운동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해방 후에 살아 있었다면, 미군정의 실정과 이승만 정권의 반민족적 작태에 맞서 싸웠을 게 틀림없다.

이육사는 시인이기에 앞서 의열단원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였고, 홍범도는 러시아 혁명가 레닌으로부터 권총까지 선물 받은 공산주의자다. 적어도 그들은 민족과 계급의 평등을 꿈꾼 공산주의 체제가 해방된 조국에 부합한다고 믿었다. 해방 후 여론이 공산주의에 훨씬 우호적이었으며, 그로 인해 미국이 신탁통치안을 먼저 제안했다는 것 또한 이미 상식에 속한다.

'킬러문항'보다 중요한 질문... 윤 대통령은 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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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6월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기념행사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서훈 취소가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요? 대한민국 건국훈장이 딱히 영예로운 것 같지도 않던데…"
 

한 아이는 건국훈장의 의미를 낮잡아보며 말끝을 흐렸다. 굳이 찾아보지 않으면 누가 받았는지도 모르는데 훈장이 뭐가 대수냐는 거다. 역사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면서, 국립현충원에 묻힌 친일파의 행적을 꼼꼼하게 찾아보던 아이다. 또 그는 건국훈장의 등급을 따로 조사하면서, 신채호와 이회영 등이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수훈하지 못한 이유를 캐묻기도 했다.

그의 말마따나, 역사에 대한 경외감과 인물에 대한 존경심은 훈장의 등급 따위와 비례하지 않는다. 특히 친일 잔재 청산이 요원한 상황에서 건국훈장은 '승자들의 잔칫상'으로 전락했다는 조롱을 듣는 마당이다. '밀양 사람' 김원봉을 모르는 아이들도 거의 없고, 대학생쯤 되면 홍명희의 소설을 교양 도서로 읽는다. 그깟 서훈 여부가 대수랴.

몇 해 전, 한 독립유공자는 죽어서 국립현충원에 묻히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친일파들이 버젓이 국립현충원의 맨 윗자리를 차지한 현실에서 그들 곁에 묻히는 게 수치스럽다고 말했다. 훈장이라고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정년퇴직을 앞둔 한 선배 교사는 "온 사회가 수십 년 전으로 퇴행하고 있는 마당에, 윤석열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훈장증은 차마 받지 못하겠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역사 교사로서,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께 간곡히 요청한다. 이른바 '색깔론'을 부추겨 정치적 이익을 도모할 게 아니라면, '친북' 운운하며 독립운동을 폄훼하고 갈라치려는 행태를 당장 멈춰달라. 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는 그들의 행적을 기준 삼아야지, 사상을 검증하려는 건 민주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독립운동은 이념과 상관없이 그것대로 인정하고, 6.25 전쟁 때 전장에서 죽어간 숱한 군인들의 숭고한 희생은 또 그것대로 추모하고 기억하면 된다. 북한의 남침에 맞서 싸운 군인들의 명예를 위해 공산주의 독립운동이 부정되고, 그들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이 70년 넘도록 입막음 당하는 나라를 어찌 민주 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끝으로, 윤석열 대통령께 한 아이의 질문을 대신 전한다. 얼마 전 자유총연맹 창립 기념식 축사 때 북한을 '공산집단'이라고 칭한 것을 두고,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이제 통일은 아예 물 건너갔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이 아이들을 어찌해야 할지 그저 막막한 심정이다. 부디 대통령께서는 질문에 답해보라.

"과거 노태우 정부 때 남북한이 각각 UN에 동시 가입했는데, UN에 가입한 엄연한 국가를 대통령이 나서서 '집단'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친북 독립운동가 서훈 박탈 #가짜 독립운동가 #자유총연맹 기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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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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