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갑신정변의 주역들왼쪽부터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 이들은 친일 의존적인 급진적 개화 운동을 펼쳤다. 이들은 이동인의 사상적 제자였다.
이병길
우정국의 쿠데타를 일으킨 김옥균·박영효·서광범 등은 창덕궁으로 달려갔다. 고종에게 "우정국에서 변란이 일어났다" 고하고 다른 궁으로 옮길 것을 권하여 경우궁으로 이거하였다. 경우궁은 사람이 살지 않는 별궁이어서 한밤중의 경우궁은 추운 날씨에 방한시설이 안 돼어 불편함이 컸다.
개화파는 국왕을 광대한 창덕궁에서 적은 수로 방위하기에 편리한 경우궁으로 모시고, 일본군의 출동을 요청하여 대문 내외를 경호하고, 다시금 신복모·이규완·서재필 등을 비롯한 사관학생과 개화파 장사 및 여기에 호응하는 전영 소대장 이경완이 이끄는 병졸들이 가담한 행동대가 전상(殿上), 전문(殿門) 내외에 배치되었다.
바로 여기서 왕궁 경호의 임무를 위해 또 국왕의 부름을 받아 입궐하는 삼명사 윤태준·한규직·이조연과 수구파의 거두 민태호·민영목·조영하 등이 처단되었던 것이다. 또 국왕과 민비의 측근이면서 민씨일파의 수족이었던 환관 유재현이 그 죄에 따라 처단되었다. (주석 18)
(경우궁)경호는 철통같았다. 즉 국왕의 주위에는 일본 공사와 개화당 인사들이 앉아 있었고, 서재필 등 사관생도 13명이 지키고 있었으며, 정전(正殿) 밖에는 이인종 등 행동대원들이 서 있고, 대문 내외에는 일본 군인이 지켰다.
다음날, 즉 12월 5일 오전 국왕의 요청으로 경우궁 근처에 있던 이재원의 집 계동궁으로 옮겼다. 이재원은 국왕의 사촌형이었다. 경우궁에서는 개화당 인사들이 반대파를 살해하는 데 골몰하여 다른 일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살해되었던 사람은 윤태준·한규직·이조연·민태호·민영목·조영하·유재현 등이었다. 계동궁으로 옮긴 뒤부터 개화당 인사들이 안정을 되찾아 새 정권 수립에 착수하였다. (주석 19)
김옥균 등 개화세력이 고종의 거처를 경우궁에서 계동궁으로 옮겼다가 이날 오후에 다시 창덕궁으로 이거한 것은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경우궁이 국왕에게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소수 병력으로 경호하기에는 다시 없는 요새였다. 해서 이곳이 선택되었는데, 민비가 밖에 구원을 요청할 방도가 없게되자 불편함을 들어 남편을 통해 거처를 이재원의 집 계동궁을 거쳐 창덕궁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당일 입궐한 전 경기감사 심상훈을 통해 수구파 및 청국인 원세개에 구원을 요청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을 알 수 없는 김옥균 등 개화세력은 그동안 준비해온 혁신정책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19일(음) 오전 〈14개 정강〉을 공포하였다. 원래는 80여 개 항이었다고 하는데 <갑신일록>등에 전하고 있는 것은 14개항이다.
14개 정강
1. 대원군을 조속히 귀국케 하고 청국에 대한 조공허례를 폐지할 것.
2. 문벌을 폐지하여 만민 평등의 권리를 제정하고 사람의 증력으로써 관직을 택하게 하지 관직으로서 사람을 택하지 않을 것.
3. 전국의 지조법(地租法)을 개혁하여 사악한 관리들을 근절하고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며 국가재정을 충실히 할 것.
4 .내시부(內侍府)를 폐지하고 그 가운데 재능이 있는 자를 등용할 것.
5. 그간 국가에 해독을 끼친 탐관오리 가운데 죄질이 심한 자를 엄중히 처벌할 것.
6. 전국의 환상(還上) 제도를 영구 폐지할 것.
7. 규장각을 폐지할 것.
8. 순사제도를 시급히 도입하여 도적을 방지할 것.
9. 혜상공국(惠商公局)을 혁파할 것.
10. 그동안 유배·금고를 받은 자들을 재심사하여 무고한 자를 석방할 것.
11. 4영(營)을 1영(營)으로 통합하여 그 가운데 장정을 뽑아 근위대를 시급히 설치할 것.
12. 모든 국가 재정을 호조(戶曹)로 하여금 관할케 하며, 그 밖의 모든 재무관청은 폐지할 것.
13. 대신과 참찬은 매일 합문(편전의 출입문)안 의정부에서 회의하고 정령을 반포, 시행할 것.
14.정부는 6조(曺) 외에 불필요한 관청을 모두 폐지하고 대신과 참찬들이 심의하여 처리토록 할 것. (주석 20)
주석
18> 강제언, 앞의 책, 102쪽.
19> 이광린, <춘고 박영효>, <개화기의 인물>, 127~128쪽,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3.
20> <갑신일록>, 12월 4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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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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