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일은 고요히 내 마음의 오솔길을 따라 걷는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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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설 기운조차 없거나 운 좋게 남편과 아이가 집을 비운 날에는 읽고 싶은 책을 골라 거실 소파에 기대어 앉는다. 독서 모임에서 약속한 책이나 리뷰 마감이 걸린 책 말고 순전히 읽고 싶은 책으로 고르는 게 중요하다. 파삭한 감자칩을 씹듯 경쾌하게 책장이 넘어갈 책, 책을 읽는 사이 마음에 한 줄기 청신한 바람이 불게 될 그런 책 말이다.
나의 두 번째 처방전도 대체로 즉효한다. 책을 읽는 일은 고요히 내 마음의 오솔길을 따라 걷는 것과 비슷해서다. '구하면 이를 얻을 수 있다'(구즉득지 求則得之)는 옛 말처럼 눈과 마음은 필요한 책과 문장을 찾아낸다. 다년간의 독서 습관이 쌓인 덕일까. 책을 펼치면 언제든 내게 절실한 위로나 조언을 발견할 수 있으니.
대신 가만히 그 속으로 침잠하는 시간과 여유가 필수다. 누군가가 정확한 단어로 명료하게 생각을 꿰어낸 문장을 쫓아가다 보면 희미하던 나의 생각도 서서히 선명해진다. 집중의 순간, 몰입의 타이밍이 구하고자 하는 문장으로 나를 이끈다.
언젠가를 위해 책을 사모은다. 당장 읽지 못하면서 사버리고 마는 책들은 미래를 위한 비상약이라고 변명한다. 마음의 모서리가 뾰족해지고 표면은 울퉁불퉁할 때 책꽂이만 보아도 두어 권 꼽아낼 수 있게 준비해 두는 거라고. 언제 어디서든 작고 네모난 그것을 펼쳐 나와 책만이 아는 안전하면서 즐겁고 아름답기까지 한 세계로 도망칠 수 있도록.
책을 펼치면 가만한 시간 속에서 나를 잠재울 수 있다. 뾰족해진 모서리에서 힘이 빠지고 메마른 마음에 물기가 돈다. 방전될 것 같던 마음에 배터리가 채워진다. 다시 삶으로 돌아가 원 없이 삶을 쓰며 사랑할 수 있는 기운을 얻는다. 책 속으로 도망친 나를 잠자코 받아주는 책은 끝내 나를 북돋아 생활로 복귀시킨다.
마음이 울적한 날 나만의 처방전을 쓴다. 좋아하는 길을 걷거나 책 속으로 도망치기. 어둑한 영화관에 몸을 구겨 넣거나 커다란 창이 있는 카페에서 고요히 머물기. 엄마에게도 자신을 보살필 시간이 필요하니까. 누군가의 엄마나 아빠, 딸이나 아들이기 전에 나 자신으로 온전할 시간이.
함께 있기 위해 자신을 둥글게 다듬어 줄 기회를 만든다. 홀로 외로이 있어야 발견할 수 있는 자신을 그렇게 만난다. 내가 나를 위해 써 줄 수 있는 처방전이 많아지면 좋겠다. 당신에게도 말이다.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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