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을 둘러싼 지자체의 '야망'

서로 마한의 중심지임을 내세워... 지역 간 경쟁 과열 우려

등록 2023.07.18 13:16수정 2023.07.1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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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 발전을 위해서 꼭 추진해야 할 과제는 □□ 역사 문화권 개발 사업, 영산포권은 □□ 역사 문화, 영산강 같은 역사 문화, 드론산업 육성 중심 발전" (강인규)
"역사문화도시를 꼭 이루어 영산포 또는 나주 구도심을 살리고, □□의 왕도를 다시 찾게 될 것"(김도연)
"공산면 고대 □□역사 파크, 공산면 남도의병 테마파크 완공"(김병주)
"□□역사박물관 건립, 영산강 천혜 자연환경 활용한 국가정원 조성"(윤병태·이상 나주시장후보)
"□□문화권 디지털 유산 구축"(김호진·전남도의원 후보)


위의 □□에 들어갈 알맞은 단어는 무엇일까? 지난 지방선거(2022) 당시 나주시장을 비롯한 전남 지역 각급 지역자치단체장 및 의원 등 선거에서 대부분의 후보들은 앞다투어 한반도 남부 지역에 존재했던 고대 왕국, '마한(馬韓)' 관련 사업 공약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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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산구 월계동의 '장고분'. 지역에서는 '마한시대'의 유적으로 규정된다. ⓒ 박용준

 
지역 교육계에서도 마한 관련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광주광역시교육청은 임용 5년차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1급 정교사 자격연수(1정연수)를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에 위탁하여 마한 관련 과목을 개설, 운영했다.

전라남도교육청은 공식 지역사 교육자료로 '이야기가 있는 전남 마한의 역사'(2021)를 발간했다. 해당 교재의 발간사에는 당시 전남교육감 장석웅 명의로 마한이 '우리 고대사의 뿌리'이고 '한국 고대사의 원형'이라 규정하고, '마한의 중심지이자 마한문화의 발상지가 전남 지역'이므로, '전라도 정체성의 토대'라고 선언했다.

여러 사서에 따르면 고대 한반도 남부에는 삼한, 즉 마한, 변한, 진한이 존재했다. 그 중 하나인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어 각각 12개의 소국으로 구성된 변한, 진한보다도 규모가 컸다. 또한 마한 54개 소국 중 목지국의 세력이 가장 강대하여, 삼한 전체를 다스렸다고 한다.

마한의 중심이자 삼한의 중심이었던 목지국이 어디에 위치했는지에 관하여는 여러 설이 있다. 마한 소국 중 하나였던 백제가 성장함에 따라 목지국을 비롯한 마한의 여러 소국들은 점차 백제에 병합되었다. 그러나 마한 최후의 세력이 오늘날의 전남 지역에 장기간 존속했음을 근거로, 전남을 비롯한 전라도 지역에서 마한에 대해 갖는 관심은 예사롭지 않다.

마한에서 전라도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가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낸 것은, '마한역사문화권' 및 그 지역적 범위를 규정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2020) 제정일 것이다. 이 법이 독특한 점은 '역사문화권'으로서의 마한역사문화권을 전라남도라는 행정 구역 범위와 1:1로 대응시켰다는 점이다.

고대 국가가 형성, 변천하여 온 지역적 범위, 그 과정에서 남긴 유적 및 유물의 분포는 오늘날의 지자체의 행정 구역과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으로 인하여 '마한=전남'이라는 인식 구조가 공식화되었다. 이후 인접한 지자체의 요구에 따라 마한역사문화권은 광주·전북 등 전라도 전역과 충청도를 포괄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한역사문화권'은 제정 초기에는 전남 일대만으로 규정되었고,이후에도 전라도 지역의 지자체를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점은, 마한이 전남 내지 전라도 정체성의 기원일 뿐만 아니라, 마한과 전라도를 동일시하는 인식으로까지 이어진다.

한편 앞서 살펴 본 마한 관련 공약은 주로 나주에 선거구를 둔 후보들이 내걸었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나주는 복암리 고분군(사적 404호), 반남 고분군(사적 513호) 등 지역 행정 구역 내에 위치한 거대 고분군 및 출토 유물을 근거로, 마한의 왕도로 자처하여 왔으며, 이와 같은 주장을 확고히 하기 위한 유·무형의 토대를 갖추는 데에 주력했다.

하드웨어 측면에서 이미 국립나주박물관(2013)을 개관하였고, 추가로 마한역사박물관, 고대마한역사파크를 확보하고자 한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마한문화권 디지털유산을 구축하여, '나주 마한 왕도론'을 완성하고자 했다.

한편, 나주 못지 않게 '옛 마한의 중심지 계승'을 내세운 지역이 영암군이다. 그 과정에서 영암과 나주는 마한 관련 행사를 두고 반목하기에 이른다. 전남 영암군이 2015년부터 '마한축제'를 개최하기 시작하자 같은 해부터 나주에서도 자체적으로 '마한문화제'를 개최하면서, '다른 지자체(나주)에 뺏겼다'며 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등, 전남 지역 내의 갈등으로 비화되어, 가장 최근 행사인 2022년까지도 두 지자체는 마한 관련 문화행사를 별도로 개최했다.

애초에 영산강 일대 고대 유적을 테마로 한 국립박물관 유치를 두고 경쟁했던 두 지역 사이에 감정이 불거지면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2023년 초 영암은 군 차원에서 거대 고분이 분포한 시종면을 '마한면'으로 개칭하려 했다. '마한면'으로 개칭하면 시종면을 관할하는 영암이 옛 마한의 종주권을 계승했다고 선전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시종면에 인접한 나주시 반남면 및 나주문화원은 '역사왜곡'이라고까지 언급하면서 영암ㆍ시종면이 마한 명침을 독점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하기에 이르렀다.

두 지역 간의 갈등은 문화재청이 설립을 추진한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의 유치 경쟁으로 더욱 고조되었다. 나주·영암은 물론 해남, 광주 등이 저마다의 행정 구역 내에 분포한 마한 역사문화유산을 앞세워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유치하고자 했으나, 올해 4월 영암으로 최종 선정되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마한 관련 담론을 해 온 나주 지역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줄어든 대신, 영암 지역이 담론을 주도하게 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와 같이 넓게 보면 전남을 중심으로 한 전라도 지역이 마한에서 정체성을 추구하는 한편, 그 안에서는 각 시·군이 옛 마한의 중심지라는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마한에서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는 오늘날 전라도 지역을 아우르는 지역 공동체가 일찍이 형성되었다는 인식을 만들어 지방 소멸이라는 위기 및 지역 현안에 따른 분열을 극복하고 지역민들이 일체감을 갖고 통합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대에 마한의 소국들이 서로 주도권을 다투었던 것처럼, 오늘날 여러 지자체들이 마한에 대한 수위권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분열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정체성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이렇듯 구심력과 원심력 모두를 지닌다.
#마한 #광주 #전남 #역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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