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만 덩그러니 남았다. 안타까움 뿐이다.
박병춘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둥지의 지붕 역할을 했던 태양광 정원등이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기대했던 새끼들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 아빠의 경계음도 들리지 않았다. 소스라치게 놀라 차에서 내려 둥지를 살폈다. 온 가족이 어디론가 떠나버린 채 폐허처럼 변한 둥지 앞에서 망연자실, 할 말을 잃었다.
#7월 15일~20일
그 어린 생명들이 엄마 아빠를 따라 어디론가 무사히 떠났을까. 천적을 피해 달아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닐까. 온몸의 감각이 노랑할미새 둥지로 향했다. 아스팔트나 험난한 지형을 슬기롭게 가로지르는 오리 가족이 생각났다. 그 오리보다 더 뭉클하게 어디선가 육추를 마치고 훨훨 날아오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노랑할미새는 주변에서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전문가의 견해가 필요했다. TV 프로그램에 야생동물 전문가로 활약 중인 박병권 도시생태 연구소 소장과 전화 연결을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노랑할미새가 석축 바위 사이에 둥지를 틀었고, 알을 품었으며, 새끼가 나왔습니다. 육추 진행 후 8일 만에 둥지 주변의 태양열 정원등이 떨어졌고, 엄마 아빠와 새끼 네 마리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이 노랑할미새는 어떻게 된 걸까요?"
엄마 아빠가 새끼들을 잘 이동시켜 어디선가 잘 키우고 있을 거라는 나의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장마가 이어지면서 석축의 돌 표면이 흐르는 빗물에 장시간 젖어 태양 볕에 노출되는 시간이 감소하면, 돌 표면의 온도가 낮아지고 노랑할미새 둥지의 온도는 상대적으로 높게 감지될 수 있습니다. 파충류인 뱀은 열 감지 능력이 탁월해서 생물이 기거한다는 좋은 표적을 얻게 됩니다.
아마 벽 타기를 잘하는 누룩뱀이나 유혈목이 등의 습격으로 새끼들이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끼들이 몸부림치고 뱀은 긴 몸으로 새끼들을 휘감게 되지요. 그러면서 태양광 정원등이 추락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생태적 일상이에요. 자연의 섭리입니다. 마음은 아프겠지만 자연의 먹이 사슬이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살벌했을 과정을 상상하니 소름이 돋았다. 태양열 정원등을 석축 사이에 올려놓았던 게 화근이었을까? 둥지를 들여다보고, 사진 촬영을 한 것이 노랑할미새에게 악영향을 준 건 아닐까 미안했다. 그저 자연의 일이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나서 죄의식은 조금이나마 줄어들었다. 건강하게 잘 키워서 멋지게 이소하기를 응원했는데, 너무나 속상하고 안타깝다.
42일 동안 둥지 주변에서 뱀을 본 적은 없지만 혹시라도 누룩뱀을 보면 때려잡아야 하나, 그대로 두어야 하나 고민이다. 현지인들은 집 주변 뱀을 그대로 두면 다시 오게 되니 죽인다 하고, 나는 원래 뱀 땅에 뱀이 주인이었으니 죽이면 안 된다고 말한다.
노랑할미새야, 너는 뱀을 볼 때마다 쪼아 죽이고 싶겠구나. 용기가 날지 모르지만 이제 나도 죽이고 싶다. 아무튼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해발 700미터, 산골살이가 만만하진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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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새' 가족... 동물 전문가가 예측한 비극적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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