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표지
틈새책방
그의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을까 진공청소기나 헤어드라이어도 사용하지 못하고,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가 다른 사람이면 증오심이 일어날 정도였다가, "나야.'라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순간 숨이 멎은 듯 "제정신을 잃었다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그런 기분.
그러나 정작 <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다음엔 아무것도 못 쓰겠다>를 읽다가 가장 감탄한 부분은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고 최여정 작가의 아버지와의 사랑이었다. <리어왕>을 통해서 '통제권의 상실'과 '돌봄의 필요'를 이야기하면서 아버지와의 일화를 꺼내 든다.
약속 장소로 향하다가 접촉 사고를 낸 아버지에게 '뭘 보시다가 한눈을 판 거에요? '운전하실 땐 정면을 봐야지"라고 다그치는 딸에게 임을 꾹 다물고 창밖을 내다보던 아버지는 마침내 입을 떼신다.
"커다란 흰 나비가 창문에 앉는 거야. 요새 나비가 잘 없잖아."
어쩌면 최여정 작가의 유려한 문장은 '스치는 가을바람에 휘청이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소년 같은 감수성을 잃지 않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은 아닐까. 최여정 작가 부녀의 사랑도 글솜씨도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다음엔 아무것도 못 쓰겠다 - 연극에서 길어 올린 사랑에 대하여
최여정 (지은이),
틈새책방, 2023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