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 숙성 와인과 비린내 나는 음식이 만나게 되면 그 비린내가 불쾌할 정도로 강화된다는 얘기가 있다.
최은경
미역줄기볶음의 냄새를 맡아보니 마트에서 구입하고 며칠 지난 녀석이라 비린내가 좀 올라오고 있었다. 싱싱한 녀석이었다면 그럭저럭 괜찮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쨌든 아내의 시도 덕분에 관념적 지식이 드디어 구체적인 현실과 연결되었다.
아내의 잔에 담긴 와인은 싱크대에 죄다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잔에 비린내가 배어있어 세제를 묻혀 부드러운 수세미로 빡빡 닦으니 그제야 냄새가 가셨다. 와인와 비린내 나는 음식을 함께 섭취했다가 봉변당하는 일은 드물지 않아서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면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다.
예컨대 한 와인 유튜버는 친구들과 먹태구이에 와인 두 종류를 곁들여 먹는 영상을 찍다가 비린 맛에 당황하는 일이 벌어졌다. 저렴한 칠레 화이트 와인은 오크 풍미가 적어서 그런지 문제가 없었지만, 가격이 서너 배 비싸고 오크 풍미가 강한 미국 나파 밸리 화이트 와인을 마시니 비린 맛이 심했다. 참고로 와인 숙성에 사용되는 225리터 크기의 프랑스 오크통은 가격이 미화 800달러에서 2500달러에 이를 정도다. 그러니 오크 숙성한 와인이 더 비쌀 수밖에.
오크 숙성 와인이 음식의 비린 맛을 강화한다는 지식이 널리 알려지는 데에는 와인 애호가들이 즐겨보는 만화 <신의 물방울>의 역할이 크다. 이 만화의 2권과 3권에 걸쳐 굴 요리와 샤블리 와인의 조합에 관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여기서 비린 맛 얘기가 나온다. 참고로 샤블리 와인은 프랑스 부르고뉴 샤블리 지역에서 샤르도네 품종의 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다. 굴과 사블리 와인은 프랑스에서 최고의 조합으로 여겨진다. 와인 한 방울 마셔 본 적도 없는 챗GPT가 이렇게 말할 정도다.
'굴과 샤블리 와인의 조합은 참으로 유명하고 요리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해산물과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클래식 페어링으로 간주됩니다. 은은한 짠맛과 부드러운 질감을 지닌 굴은 샤블리 와인의 산뜻한 미네랄 특성을 보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의 물방울> 주인공인 와인 평론가 토미네 잇세는 생굴 요리와 샤블리 와인을 함께 내놓은 한 프랑스 음식점에 대해 혹평을 남긴다. 음식은 맛있지만 와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챗GPT도 알 정도로 최고의 궁합인데 왜 그럴까?
음식점에서는 신경 써서 오크 숙성한 고급 샤블리 와인을 내놓았지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오크 숙성한 와인은 생굴의 비릿한 맛을 한층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주인공인 맥주회사 직원 칸자키 시즈쿠가 등장해 식당 주인을 도와주는데, 페어링하는 와인으로 오크 숙성하지 않은 저렴한 샤블리 와인을 선택한다. 다시 식당을 방문한 평론가 토미네 잇세는 개선된 조합을 체험하고서는 좋은 평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