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수고로 택배는 배송되고 있다.
픽셀
택배기사는 여성이었다. 앞이 보일 것 같지도 않게 푹 눌러쓴 모자너머 보이는 앳된 얼굴. 몸집도 무척 작았다. 배송물량이 가득한 카트와 커다란 백을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한 번의 물량으로 보기에는 택배박스가 너무 많아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언뜻 봐도 일이 서툴어 보였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뛰쳐나가도 시원찮을 판에, 오가면서 몇 번이나 송장을 훑어봤다. 아파트에 살면서 택배기사들을 많이 봤는데, 불편함을 넘어서서 '일을 잘 마칠 수 있을까, 저 분 괜찮을까' 걱정이 드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오가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한 번만 하는 게 아니라 층마다 죄송하다는 말을 두 번씩이나 반복했다. 불편함은 조금씩 익숙해졌지만, 택배기사의 죄송한 표정과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이정도면 없던 잘못도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배박스와도 같은 노동, 노동자
앵무새처럼 계속되는 '죄송합니다' 소리를 들으며 수많은 감정노동자들이 떠올랐다. 고객은 왕이 아닌 데도, 왕처럼 행세하는 고객들을 위해 죄송해야만 하는 사람들. '누군가의 아들, 딸일 수 있습니다' 하는 문구를 비웃는 듯한 폭언과 욕설에 고스란히 노출된 근로자들. '고객만족도 1위 기업' 같은 타이틀은 이들의 피와 땀, 눈물로 완성되어 간다.
굳이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그녀가 그토록 죄송하다고 반복한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첫째, 그녀는 물건을 배송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서 일부 주민에게 불편을 주었다. 둘째, 하필 직장이 업계에서 힘들기로 유명한 '쿠팡'이라는 것이었다. 셋째, 아직 일이 손에 완전히 익지 않았다. 박스 1개를 배송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초단위로 더 쪼갤 수 있을 때까지, 그녀는 더 많은 죄송함을 느껴야 하리라.
고객은 비용을 지불하고 기업은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한다. 거래가 발생함으로써 고객은 만족을 느끼고 기업은 이윤을 얻는다. 모두가 윈윈 하는 순간이다. 거듭 '죄송합니다'를 말하던 택배기사는 어떨까?
회사 입장에서는, 근무자의 업무수행능력이 부족하면 내치면 그만이다. 매 층마다 덜컹거리며 흔들리던 박스는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그녀의 포지션과도 비슷해 보였다. 어쩌면 그녀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일을 먼저 그만둘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나처럼 한 집안의 가장이라면 쉽게 그만두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당장의 생존을 위해 노동이 강요되는 사람에게 자신을 아끼고 돌아볼 여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처음 느꼈던 불편함은 점차 '어떻게 하면 택배기사가 덜 미안해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글을 통해 배우는 '그럴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