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나에게 부족하게 살더라도 괜찮다고 용기와 확신을 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래선지 책은 자꾸만 소유하고 싶다.
정승주
일찍이 법정 스님은 우리가 무언가를 소유하면 그 무언가에 얽매이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스님은 하루 한 가지씩을 버리는 '무소유'의 삶을 다짐하고 실천했다. 그때 스님 나이가 40이 채 되지 않았다니 그 혜안이 놀랍기만 하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 법정 지음, <무소유>, 범우사, 1976, 22쪽
철학자 유대칠은 무언가를 소유하면 법정 스님의 말처럼 소유물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소유의 결과로 얻게 되는 기쁨에 취해 타자에 대한 공감과 공존하려는 의식마저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사람에게 존재의 근거이기도 한 '관계'의 왜곡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유의 기쁨은 '나'의 주체성을 망각하게 한다. 무엇인가를 얻음으로 누리는 기쁨은 소유되는 대상이 기쁨을 주는 주체가 되어 나를 지배한다. 나는 그 소유물에 종속된 노예가 되어버린다. (중략) 소유의 기쁨은 공감을 무디게 한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남'의 것은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중략) 소유의 기쁨이 가득한 곳에 '더불어 있음'은 성가신 일이다." - 유대칠 지음, <대한민국철학사>, 이상북스, 2020, 200~201쪽
선각자의 가르침대로 무소유로 살아가면 좋겠지만 나처럼 겁 많고 귀 얇은 소시민이,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그에 따른 유혹과 욕망을 무시하며 살기는 어렵다. 마침 정호승 시인은 돈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자족하며 사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말한다.
"돈은 인간을 주인처럼 섬기기도 하지만 노예처럼 종속시키는 본질 또한 지니고 있습니다. 돈에 종속되거나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돈의 주인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돈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돈이 많든 적든 자족하면 됩니다." - 정호승 지음,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비채, 2006, 249쪽
결국 나는 조금 덜 가지고 그 처지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른바 제3의 길을 선택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적게 가지더라도 그 부족한 만큼 다른 빛깔로 채울 수 있다는 이 오묘한 상황을 맛보고 즐기는 것이 은퇴 이후의 삶으로 괜찮을 성싶었기 때문이다.
몇 년 지나면 이제 수입이라곤 국민연금만 남게 될 것이다. 지금 나와 아내의 지상 최대의 목표는 둘째의 독립이다. 아들도 그동안 세뇌(?)를 많이 당해선지 대학 졸업 때까지만 지원해주면 경제적으로 반드시 독립하겠다 한다.
그때까지 잘 버티기만 하면 된다. 부족하면 좀 더 좁은 집으로 가서 살고, 그것도 어렵다면 언론인 김선주의 말대로 십 년에 백 킬로미터씩만 서울로부터 멀어져서 살면 된다.
은퇴 3년 차에 접어든 나는 지금의 부족한 삶에 만족한다. 현역 시절의 풍족하던 때보다 낫다는 느낌도 자주 든다. 그래서 감사하다. 그놈의 마음이 아주 가끔 흔들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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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와 산책을 좋아하며, 세상은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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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줄어든 수입, 이렇게 넘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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