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그레인 머스터드 소스를 넣은 오이무침
김준정
여름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채소를 싸게 살 수 있다는 거다. 오이 하나도 여름에는 더 아삭하고 수분을 잔뜩 머금고 있다. 여름의 기운이 가득 찬 채소로 상을 차리면 건강해지는 기분에다 뭐랄까, 이렇게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고기 없이도 만족스럽다는 사실에 안심이 된다. 뜯어도 빽빽하게 자라는 부추처럼 이 기쁨만큼은 한도가 없을 것 같아서.
재료를 아끼지 않고 푹푹 넣어서 무치고 부치다 보면 풍성한 여름이 고마워진다. 고기나 생선은 연속으로 먹으면 질리지만, 채소는 저마다 맛이 다르고, 풋풋함이 늘 새롭다.
문득 채소를 먹는 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자나 가공식품은 쟁여두고 먹을 수 있지만, 채소는 금방 시들기 때문에 그때그때 사 와서 조리해야 한다. 시간은 물론 마음의 여유까지 필요하다. 어떻게든 버리지 않고 먹으려면 다양한 조리법을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고 싶은 마음을 참으면 늘 부족하다는 기분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얼마나 가졌냐와 상관없이 생기는 이 결핍감이 사람을 가난하게 하는 것 같다.
결국, 풍성하게 누리고 있다는 건 감각 같은 게 아닐까. 그리고 그 감각은 비싼 물건이나 어쩌다 가는 해외여행 덕분이 아니라, 매일 푸짐하게 차려내는 제철 음식이 차곡차곡 쌓여서 길러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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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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