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를 놓지면 소나무를 망친다. 정원사는 비가와도 쉬지 않는다.
유신준
사부가 15살 때 일본에 정원 바람이 불었다. 60년 전 일이다. 정부에서 주도한 정원 바람에 따라 정원 일거리가 넘쳐났다. 아버지의 권유로 정원 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선택에 망설임은 없었다. 전문학교는 설계, 시공, 관리로 분야를 나눠 가르쳤다.
구루메 지역에서만 총 60명을 모집했는데 그 중 3명이 여자였다. 전체 중 5%. 지금도 그렇지만 정원사는 남자들 세계였다. 당시는 급조된 학교여서 제대로 된 교과서가 없었다. 도쿄에서 불러온 전문가가 프린트물로 수업을 진행했다 한다.
교과서는 없었지만 다들 수업은 열정적이었다고 사부는 회상한다. 전문가 선생은 핵심을 뽑아서 방향만 잡아줬다. 공부는 학생이 찾아서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정원일은 실습 위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나를 가르치는 사부의 불친절한 수업방식은 그때 비롯된 것일지도... 그렇게 배웠으니 그렇게 가르칠 밖에.
그들은 작년까지도 동창회를 했다. 함께 고생하며 공부한 사이라서 관계가 끈끈하게 이어졌다. 15명 정도가 만났는데 올해부터는 만남을 그만두기로 했단다. 건강할 때 얼굴을 마주하면 옛 시절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얼굴을 보든 소문을 듣든 불행한 일 투성이라 의미없는 동창회가 되었기 때문이란다.
사부는 전문학교에 다닐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실습을 많이 다녔다. 대상은 아버지 고객들이었다. 그때 인연을 대부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선대부터 대를 이어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정원사가 대를 이었으니 당연히 정원주도 대를 잇는다.
사부 고객은 기본이 50년이다. 5개월이나 5년이 아니라 50년!이다. 길어야 겨우 1년단위 계약갱신인 자본주의적 상거래 관행과는 단위 자체가 틀리는 거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세월이 흐르고 흐르니 국호만 일본이라 바뀐 건지도... 아직도 이 사람들은 에도시대 태평성대를 누리며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부의 주요 고객들은 동네보다 타지에 많다. 편도 2시간 걸려 큐슈의 끝 지역인 기타큐슈까지 간다. 이른바 전국구 정원사다. 소문난 사부 솜씨답다. 그쪽도 사부의 작업 스타일을 잘 알고 있다. 라디오로 상징되는 즐겁게 일하기다. 물론 작업은 칼이다. 정성껏 성실하게 일하는 건 기본.
사부하고 싶은대로 즐겁게 일하니 좋은 작품이 나온다. 좋은 작품이 나오니 정원주들이 사부를 안 놓으려 한다. 고객과 트러블이 없다. 그쪽도 50년 전에 시작된 관계니 반백년씩이나 인연을 이어온 평생 무기계약 고객들이다.
정원을 손질해 놓으면 그 정원을 보고 다른 손님이 찾는다. 손질해 놓은 작품이 상품 견본인 셈이다. 그렇게 정원이 새끼를 치고 그 새끼가 또 새끼를 쳐서 기타큐슈에만 관리정원이 10곳이 넘었다. 요즘은 힘이 부쳐서 오히려 일을 줄이고 있다 한다. 남들은 일거리가 없어서 발을 동동구르는 시대인데... 맞다. 솜씨만큼 대접받고 사는 게 사람 사는 이치다.
기본 몇 십년 고객이다 보니 정원일은 사부가 다 알아서 한다. 정원주들이 신경 쓸 게 별로 없다. 그쪽 고객들은 사부가 2시간씩이나 걸려 와 주는게 고맙기만 하다. 혹시 뭔가 틀어져서 안 오겠다고 하면 어쩌나 되레 걱정이다. 그렇게 거래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게 무기계약 50년이다. 이래도 되나 싶다.
시기가 중요한 소나무 손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