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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거쳐 도쿄로 돌아와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29] 김옥균은 '삼화주의(三和主義)'를 구상하였다

등록 2023.07.31 13:39수정 2023.07.3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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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의 모습 1851년생인 김옥균은 21살 때인 1872년 과거에 장원급제했다. 인간 관계가 폭 넓었고 다재다능했다. 뛰어난 재능과 함께 인간적인 약점도 많았던 그는, 신복룡 교수의 평가처럼 재승박덕(才勝薄德)한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김옥균의 모습1851년생인 김옥균은 21살 때인 1872년 과거에 장원급제했다. 인간 관계가 폭 넓었고 다재다능했다. 뛰어난 재능과 함께 인간적인 약점도 많았던 그는, 신복룡 교수의 평가처럼 재승박덕(才勝薄德)한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위키백과
 
김옥균의 혁명가적 기질은 아무리 험난한 고초와 시련에도 굴복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딴 섬에 갇혀서도 계속하여 일본 정부에 그 부당성을 항의하고 언론에 폭로하였다.

구미자본주의 열강과의 '조약개정' 문제와 관련하여 맹렬한 공격을 받고 이노우에가 외무상의 자리를 내놓게 되고 그 대신 오쿠마가 외무상으로 된 뒤에 다시 김옥균의 억류문제가 제기되어 1888년 5월에 가서 김옥균을 홋카이도로 천거시키기로 결정되었다. 

이때에 일본 정부 내에서 중요하게 문제로 된 것은 김옥균의 정치적 활동이 국내의 반정부세력과 결부되어 문제가 발생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또다시 자객들에 의한 암살사건이 일어나 외국과의 '조약개정' 교섭을 추진시키는 데 악영향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이처럼 진퇴양난에 빠진 오쿠마는 김옥균을 도시 가까이에 두고 감시하는 편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것으로 김옥균을 홋카이도의 도청소재지인 삿포로 근처에 보내기로 하였던 것이다. (주석 23)
  
그동안 체력이 많이 쇄약해졌다. 기후와 음식이 맞지 않아서였다. 그럴 즈음 홋카이도로 이전이 결정되고 한 달 가량 도쿄에 머물다 삿포로에 도착하였다. 1888년 6월이다. 그러나 홋카이도에 머문 기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조선에 대한 침략정책을 추진하면서 김옥균을 이용하려는 책략을 꾸몄기 때문이다. 그리고 1890년 10월 그의 홋카이도 억류를 해제, 일본 내지에 거주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는 이 해 11월 도쿄로 돌아왔다.

이 시기 국내외의 주요 정황이다.
1890년 11월 국내외의 주요 정황 1890년 11월 국내외의 주요 정황
1890년 11월 국내외의 주요 정황1890년 11월 국내외의 주요 정황김삼웅
(주석 24)

도쿄에 돌아와서는 어느 정도 감시가 느슨해졌다. 각계 인사들과도 만날 수 있고 신문·잡지도 접하게 되었다. 동북아 정세가 크게 우려되었다. 진원지는 일본의 침략주의 사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서였다. 


김옥균은 '삼화주의(三和主義)'를 구상하였다. 조선·중국·일본의 세 나라가 대외관계에서 평화를 유지하며 서로 연합하여 구미열강의 식민주의를 반대하며 각각 자기나라의 독립을 고수하면서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입론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주체적으로 발전하고 연대하여 서양 세력에 대항하자는 주장이었다. 이를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이홍장 등 실력자들을 만나겠다는 구상을 하였다.

김옥균은 일본망명 초기부터 중국사람들과도 일정한 교제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홍장의 아들인 이경방(李經芳)이 주일공사로 도쿄에 와 있을 때 김옥균은 그와 접근하여 교제관계를 맺었고 후에 이경방은 신임공사 왕봉조(汪鳳藻), 공사관 관원인 유경분(劉慶汾)으로 하여금 김옥균의 거처를 종종 방문하게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후 이경방의 명의로 김옥균을 청국에 초청하는 편지를 유경분을 통하여 김옥균에게 전달한 일도 있었다. 김옥균은 청국에로의 출발을 앞두고 이러한 관계에 대하여서도 일정한 고려를 하였다. (주석 25)



주석
23> 앞의 책, 204쪽.
24> 앞의 책, 430쪽.
25> 앞의 책, 210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옥균 #김옥균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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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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