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심판 선고에서 재판관 전원 만장일치로 '기각' 결정이 내려지자, 대심판정을 나서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유성호
헌재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 안전을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국가가 아무런 보호조치를 하지 않거나 적절하고 효율적인 보호조치가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를 하지 않았음이 명백한 경우만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헌법 제10조제2문)를 위반'한 것이라는 낡은 공식을 고집했다. 21세기에 그런 국가가 과연 입헌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권력분립은 국가기관 간의 그런 '짬짜미'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헌재는 명색이 헌법을 재판하는 기관인데 헌법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헌법 또는 법률을 위배했는지를 판단해야 하는데(헌법 제65조제1항), 주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만 기준으로 삼았다. 헌법재판이 아니라 법원도 할 수 있는 법률 차원의 재판이었다. 헌법은 법관에게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심판하도록 명령하고 있는데도(헌법 제103조), 헌법을 삭제했다.
헌재가 말했듯이 탄핵 심판은 고위공직자의 헌법위반이나 법률 위반에 대해 헌법위반을 경고하고 사전에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 헌재는 법률조항을 파편화해 미분함으로써 총체적인 법률적 책임조차 수많은 작은 조각으로 해체했다. 헌재처럼 꼼꼼한 법률 해석과 적용을 유지하면, 탄핵을 통해 파면될 공직자는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도 어찌 보면 헌재가 국민의 압박에 떠밀려 헌재 자신을 구명한 것뿐이다.
헌재는 가장 중요한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가 무엇인지를 해석하고, 특히 고위공직자가 어떤 헌법적 책임으로서 국정 운영에 임해야 하는지를 밝혀야 했다.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가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는 국민의 생명권 보호 관련해 유럽인권재판소의 기준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중 대표적인 예를 들면, 국가 또는 국가기관의 생명권 보호를 위한 조치 의무는 당국이 알고 있었거나 알아야 했던 생명에 대한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위험을 피하는 데 필요한 것을 모두 해야 하는 것이고, 만약 당국에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모든 조치를 하지 않았음이 드러나면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탄핵 심판은 이상민을 형사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행안부장관의 그 직을 계속 유지하게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안전과 재난의 총괄적인 책임을 그에게 계속 맡길 수 있는지 국민의 신뢰 여부를 헌법적으로 판단할 일이지 구체적인 재난안전법 위반 여부를 중심에 놓고 상세하게 따질 일이 아니다. 국정은 국민 전체와 관련된 사안이므로 국가공무원법상의 성실의무와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축소할 일도 아니다.
이러한 의무 위반을 인정한 재판관 세 사람의 별개 의견조차 안전과 재난 관련해 대통령 다음의 책임자인 행안부장관을 면책할 뿐이다. '단 한 사람도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았으니 잘못이 없고 자신의 권한도 아니라는 아이히만'은 대한민국 헌재를 통해 이상민 행안부장관과 함께 좀비가 돼 살아났다.
잃어버린 신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