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송 작업요령은 어제 이미 터득했겠다, 오늘은 터득한 요령을 실험하는 날이다
유신준
전철을 타면 프로그램된 인조인간처럼 일제히 스마트폰에 코박는 초 드라이한 세상 아닌가. 50년을 함께하다 보면 이정도 다정한 인간 관계쯤이야 기본으로 만들어지는 건가.
기본 아니다. 사람이 어디 함께 한 세월만으로 그렇게 가까워지던가. 평생을 살고도 돌아서는 황혼이혼이 흔한 세상에. 이 사람들 알고보면 지독히 아날로그한 사람들이다. 이웃사람 만나면 서서 한 시간 소통은 기본이다.
아직 사람의 온기에 기대어 살고 있는 거다. 이 바쁜 세상에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이런 진기한 풍경은 사람 냄새 나는 인간 관계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옆집에서 정원 손질 한다고 커피 타서 가져 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오후에도 사다리 없는 소나무 작업은 계속됐다. 5미터쯤 될까. 비가 와서 미끄럽다(이 양반은 주로 위험한 일만 나를 시킨다니까!!). 다행히 나는 평소 나무를 잘 타는 편이다. 이까짓 것 가지가 튼튼한 소나무 정도는 껌이다.
흑송 작업 요령은 이미 터득했겠다, 오늘은 터득한 요령을 실험하는 날이다. 솔잎을 마음껏 덜어내는 거다. 어디까지? 그렇게 다 없애면 어떻게 하냐고 사부가 꾸중할 때까지. 어차피 나한테 맡겼으니까 내 맘대로 하는 거다.
수고를 한번에 보상 받는 기분
작전은 주효했다. 내가 손질한 이파리가 사부 가지보다 현저하게 적은 데도 별 말씀이 없으시다. 네가 나를 앞지르면 일을 그만둬야지 어쩌겠냐고 배수진까지 치신다. 어떻게 60년을 앞지르겠냐고요... 그런 일은 죽어도 없을 거라고 했지만 사부가 슬그머니 내 솜씨를 인정한 건 사실이다.
내심 뿌듯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오전 중에도 흑송 손질에 심혈을 기울였다. 가지도 네 마음껏 정리해 보라셔서 뭉텅뭉텅 잘라내 버렸다. 예술품처럼 잘 다듬어 놓은 가지들을 자르려니 캥기는 구석도 있었지만,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그냥 뚝뚝 잘라냈다. 초짜의 만용.
마침내 터득한 요령은 이거다. 윗쪽은 가볍게 아랫쪽은 묵직하게 다듬되 전체적으로 균일한 밀도를 미묘하게 유지해야 한다. 자연스런 배열이 최대 관건이다. 조금이라도 무거워 보이는 곳은 사부가 반드시 지적했으니까. 일본 정원사의 톱 클라스인 교토 정원사들이 추구하는 정원 손질법이 '손대지 않은 것'처럼 손대는 거라던가.
위쪽을 끝내고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이곳은 아래쪽이니 좀 두텁게 해야 전체적인 균형이 유지된다면서 이제부터는 가지를 아끼란다. 아끼라는 건 이제부터 맘대로 못 자른다는 뜻이다. 신경이 쓰이니 속도가 갑자기 줄었다. 탄력받은 대로라면 쉽게 끝날 것 같던 일이 결국 2시 반까지 작업시간을 꼬박 채웠다.
현장 일의 최대 장점은 결과를 즉시 확인할 수 있다는 거다. 청소까지 마치고 정원을 돌아보는데 작업 결과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가 손질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이쁘다. 정원사의 최대 즐거움이다. 힘들었던 과정의 수고를 한방에 보상받는다. '키레이니낫다네'(깔끔해졌구나) 사부의 작업종료 선언이 떨어졌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오마이뉴스 창간정신[모든 시민은 기자다]에 공감하는 시민. 보통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좋은 세상 위하여 기자회원 가입. 관심분야 : 일본정원연구, 독서, 자전거여행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