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밖에 없는 가리코미를 정원주가 심심해서 잘라놔 버렸다
유신준
오른쪽으로 오늘 작업한 키 큰 흑송이 맨 앞에 서 있다(모든 정원 설명은 응접실에서 봤을 때가 일반적 기준이다). 뒷쪽 아래로는 키 작은 철쭉 가리코미(두부깎기)가 길게 늘어서 있다. 일본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네지메(뿌리마무리)라고 하는 기법이다. 네지메 가리코미는 흑송의 뿌리 쪽을 가려 주면서 정원을 분위기를 부드럽게 연출해주는 게 목적이다. 어느 정원이나 다 있다.
하나밖에 없는 가리코미를 정원주가 심심해서 잘라놔 버렸다. 초짜 티가 확 난다. 가리코미란 모름지기 상단 수평을 잘 맞춰야 하는 건데...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보고 자르고 털고 나뭇잎 절반 마무리까지 순차적으로 해야 하는 건데... 나는 10미터를 3시간 걸려서 겨우 사부 오케이 사인이 났는데... 그녀가 그런 걸 알 턱이 있나.
그녀가 내게 묻는다. 내가 잘랐는데 어때요? 이쁘다고 해야지 뭐라 하나. 모르는 게 약일 테니. 정원은 전체적으로 균일한 품질을 유지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구색을 맞춰 조화를 이루는 원 세트다. 그래야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뭔가 미진한 곳은 조화되지 못하고 따로 놀아 눈에 거슬린다. 대가 그림에 초짜 붓질이 신경 쓰이는 것처럼.
바깥쪽으로는 시마 도네리코라는 나무가 한 그루 우뚝 서 있다. 연초록 이파리에 큼지막한 노랑색 꽃뭉치를 주렁주렁 달고서. 멀리서 봐도 한눈에 들어오는 이쁜 나무다. 아까 흑송 높은 곳을 전지할 때 바람에 실려 향기를 솔솔 풍겨주던 나무였다. 재미있는 흑송 작업에 꽃향기까지 더해지니 이건 금상첨화 분위기였다.
인기 수종, 유행을 다하면 뭐가 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