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고 있는 내게 웃음 짓는 야생화, '물봉선'
박병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자책을 거듭하는 순간, 이건 또 뭔가! 1차적으로 잘못 탔던 임도와 다시 만나고 있었다. 이전 두 갈래 길에서 왼쪽 임도를 선택해 걸었는데 산을 한 바퀴 돌고 돌아 이전 임도로 되돌아와 만난 것이다. 허탈 그 자체였다. 올라왔던 길을 다시 만났으니 잃어버린 길은 찾은 셈이었다.
남은 거리는 5킬로미터 정도였다. 완만한 내리막 임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119 구조대원입니다. 지금 어디 계신가요? 몸 상태는 어떠십니까?"
"아, 예에... 우선 죄송합니다. 제 실수로 무리를 하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됐습니다. 길을 잘 찾았고 몸에도 문제없어요. 3~4킬로미터 정도 남은 듯해요. 천천히 내려갈 테니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저희 구조대 차량이 이미 임도를 따라 진입했으니 계시는 곳까지 가겠습니다. 안전한 곳에서 기다려 주세요."
고마운 마음이 더 깊었다
산이 좋아 산에서 사는 내가 휴대폰도 제대로 안 터지는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119 산악 구조대 차에 실려 내려간다고? 구조대원과 소통을 마치는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영화에나 나오는, 사막으로 쫓겨난 악당이 겪는 듯한 갈증이 찾아왔다.
10분 남짓 기다렸을까? 임도를 타고 올라오는 차량의 엔진음이 점점 크게 들렸다. 팀장으로 보이는 119 산악 구조대원은 내 체력과 부상 여부를 물었다. '네, 괜찮아요'보다 '미안해요'가 먼저 나왔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미안했다.
"임도를 잘못 타면 하염없이 걷게 돼요. 한여름에 탈진하면 큰일 날 수도 있어요."
구조팀장의 위로에 미안한 마음이 깊어졌다. 구조대원이 건네는 생수 한 병을 벌컥벌컥 마셨다. 사막은 오아시스로 변했다. 구조대가 아니었더라면 갈증 속에서 3~4Km를 더 걸어야 했을 텐데, 혹시라도 탈진 사고가 날 수도 있었을 텐데, 고마운 마음이 더 깊었다.
8월 첫날을 기념하여 기분 좋게 마음 다잡으려던 시도는 내 주변을 아주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아내의 침묵과 두 딸의 카톡은 매발톱보다 매서웠다. 직장에서 아빠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던 아들은 '헬기보다 차 타고 와서 다행'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운동량을 표시하는 앱에 숫자가 떴다. 3만 6134 걸음, 24.36Km. 6시 30분에 나서 10시 30분에 귀가하려던 계획은 오후 4시 30분 귀가로 변경됐다. 250㎖ 생수 두 병만 챙겨 임도와 계곡을 넘나들며 무려 10시간 동안 8월의 첫날을 먹칠했다.
무사 귀환 후 밥을 먹는데, 나뭇가지에 앉아 나를 노려보던 뱀(유혈목이)이 떠올랐다. 스틱으로 내려치지 않아서, 살생하지 않아서 이를 기특하게 여긴 산신령의 도움으로 무사히 내려와 밥을 먹는다고 믿었다. 구조대에게 너무 미안했다. 닷새 후 찐 옥수수 스무 개를 들고 구조대를 찾았다. 사무실에 들어가기가 하도 부끄러워 주변 소방관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도망치듯 나왔다.
어리석음으로, 무모한 객기로, 생각 능력 부족으로, 고산 지대 임도에서 길을 헤맸다. 강조컨대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참회록이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고, 절대 해서도 안 될 짓이었다. 우리 중에 그 누구에게도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리라. 독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이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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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19 신세... 저의 어리석음을 꾸짖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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