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가족
언스플래시
지금은 식탁을 쓰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 사람의 편의를 위해 네 명이 움직이던 시절을 말이다. 그러다 아빠가 우리 집에 놀러 온 어느 날, 주방이 좁게 느껴져 거실에 밥상을 펼쳤다가 오랜만에 그 광경을 목격했다.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아빠는 밥상을 비틀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남자가 그걸 어떻게 하겠냐" 자주 말하던 아버지
상을 차리느라 바빴던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아버지가 식사를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어른이고 대접을 받아야 하며 그 주변의 모든 이들은 수발을 드는 존재이니까. 아빠는 선량한 사람이지만 가족을 배려하지 않는다.
나 어릴 적, 아빠는 우리 삼남매에게 닭다리를 양보하곤 했고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한참 뒤 그가 버릴지언정 결코 먹지 않는 음식이 닭다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헛헛함이라니. 그는 여전히 자신의 취향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만 가족들의 입맛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아빠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남자가 그걸 어떻게 하겠냐?"
청소나 요리 등 가사노동을 두고 하는 말이다. 초등학생도 다 하는 주변정리를 그는 남자라서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의 노동에 빚지며 살아간다. 그러니 실력이 늘 리가 없지만 당당하다. '남자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옛날 드라마 속 '대발이 아빠'처럼 시도 때도 없이 언성을 높이며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을 주장하는 가부장제의 화신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1991년 작 '사랑이 뭐길래'), 아빠는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과묵하거나 근엄하지 않았고, 예나 지금이나 농담을 좋아하고 침묵을 못 견디는 수다쟁이다. 나는 아빠가 무서웠던 적이 없으며 딱히 혼난 기억도 없다. 하지만 활달하고 유쾌한 것은 그의 성향일 뿐, 본질은 대발이 아빠와 다르지 않았다. 자식들에게 엄하지 않았던 것도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양육은 여자의 일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