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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와 떠난 46일간의 여행, 이랬습니다

하루 만 보 이상 걸은 아이들... 여행 다니듯 외출한 경험이 쌓여 이룬 결과

등록 2023.08.15 11:14수정 2023.08.1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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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미국은 여름방학이 길다. 마지막 수업이 6월 16일에 있었고, 새 학년은 8월 30일에 시작되니 방학이 두 달 반 정도이다. 주변 친구들의 여름방학 계획을 들어보니 주간 단위로 진행되는 각종 캠프에 참여하거나,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을 방문하며 다니거나,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17년 만에 무직자가 되어 아이들과 방학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된 첫 여름인 만큼 기대가 되었다. 코로나19 전 계획했던 프랑스 남부 여행과 친구네 방문을 목적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고 떠났다.


두 아이와 함 팀이 되어 46일

2주는 숙소를 이동하며 프랑스 남부를 여행했고, 2주는 브르딴뉴 지역에 있는 헨느(Rennes)에 살고 있는 친구네에 머물렀고, 마지막 2주는 파리(Paris) 친구네에서 지낸다. 함께 여행했던 남편은 진작에 집으로 돌아갔고, 30일 가량 아이 둘과 내가 한 팀이 되어 여행하는 중이다.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곳을 다니기도 하지만 다섯 살, 아홉 살 아이가 좋아하는 야외 놀이터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활동을 찾아 다니기도 한다. 헨느(Rennes)에서는 친구네 아이들과 동네 수영장을 다녀오고, 아침마다 자전거로 동네를 한 바퀴씩 달렸다.

인근 공원에서 하는 나무타기 활동과 도서관에 진행하는 우주 관련 프로그램도 참여했다. 파리에서는 하루 1만 보 이상을 걸으며 도시를 탐방하고, 놀이터를 찾아다니고, 크고 작은 갤러리와 박물관에서 명작들을 만나고 있다. 잠들기 전 아이들과 짧게 하루를 정리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가 한 팀이 되어 이번 여행을 하고 있잖아. 서로 도와주고 힘을 주면서 이번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너희는 진짜 멋진 팀 멤버들이야. 내일은 또 얼마나 재미있는 일들이 펼쳐질까 기대하면서 꿈나라에 가자."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잘 걷고 잘 먹고 잘 논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 보고, 새로운 풍경에 감탄하고, 새로운 물건들에 호기심을 잘도 느낀다. 아직은 아이들이라 챙겨 줘야 할 것들이 있지만 불평 많은 어른과 여행하는 것보다 훨씬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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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와 햇살과 바람과 하늘이 아름다웠던 멍똥(Menton)의 지중해 바다 ⓒ 김보민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다섯 살, 아홉 살이 되었다고 곧바로 이렇게 여행을 잘하게 된 것은 아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여행 다니듯 외출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만 보 이상을 걸을 수 있는 아이들로 컸다.

큰아이가 4살, 둘째가 2개월 무렵 싱가포르로 이사를 했다. 주말이면 2인용 유아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간식, 분유, 물, 갈아입힐 옷 등을 챙겨 싱가포르 곳곳을 다녔다. 차도 없이 지하철과 버스로 이동했기에 나와 남편은 종일토록 2만 보씩 걸었다.

싱가포르에 있는 놀이터란 놀이터는 다 찾아다녔고,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와 더운 여름에 놀기 좋은 각종 갤러리와 박물관, 바닷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야외 공원까지 아주 알차게 걸어 다녔다.

아이들이 좀 자랐을 땐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고 좋아하는 해변을 찾아다녔고, 하루 종일 바다 수영을 하고 카약을 타고는 대충 씻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모자와 선크림, 커다란 물통을 살뜰하게 챙겨 어디든 달려가서 놀았다.

적도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놀았던 덕분인지 아이들은 실내에서 놀기보다 밖에서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주말마다 밖에서 놀았던 체력으로 이번 여행에서 아무리 걸어도 아이들은 징징대거나 집에 가자며 보채지 않는다. 나무 그늘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잠깐 쉬는 것으로 아이들은 스스로 충전했다.

아이들이 새로운 공간을 즐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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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상 프로방스(Aix-en-Provence)에서 방문한 세잔의 아뜰리에 ⓒ 김보민

 
어릴 때부터 갤러리나 박물관, 도서관을 드나든 것도 이번 여행을 즐기기에 도움이 되었다. 갤러리와 박물관은 추위와 더위를 피해 실내 활동을 하는 곳으로 최적이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자주 마련되는 곳이다.

양육자인 내가 예술에 조예가 깊고, 예술을 늘 가까이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아이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놀면서 이왕이면 괜찮은 환경에 노출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곳이었다. 그 덕분에 아이들도 공간을 즐기는 방법을 조금씩 익힌 상태로 프랑스의 각종 갤러리와 박물관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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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을 다녀오며 아이가 그린 모나리자 ⓒ 김보민

 
큰아이는 학교에서 들어본 화가의 작품을 만날 때 조금 더 관심을 보이기도 했고, 작품에서 눈에 띄는 부분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유명한 작품을 모사하기도 했다. 작은 아이는 그런 큰아이를 흉내내기도 하고, 내 손가락 끝을 따라 그림과 조각을 보며 귀를 쫑긋 세우고 내 설명을 듣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내 친구의 집은 새로운 공간이자 다른 규칙이 있는 공간이었고, 집이 아닌 공간에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생활하는 아이들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또래 아이들이 있는 친구네와 아이가 없는 친구네의 생활 방식은 달랐고, 아이들은 각기 다른 규칙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듯했다.

프랑스는 보통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이 대화하는 중에 아이들이 부모에게 말을 하려고 하면 아이에게 기다리라는 메시지를 먼저 준다. 어른의 대화가 끝난 후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부모에게 아이의 요구가 언제나 최우선이 아니라는 것과 아이들도 부모의 시간을 존중해야 하는 것을 배우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식구 수가 많은 친구 집의 경우, 식사 준비를 하거나 식사를 마친 후 아이들은 각자 맡은 역할을 하며 부모를 도왔다. 물컵과 수저를 식탁에 갖다 놓고, 식사를 마친 그릇을 개수대에 옮기기도 했다.

마치 캠프에 와서 공동생활을 하듯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식탁을 정리했다. 집에서도 가끔 집안일을 도운 적이 있지만 다른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은 처음이었고 아이들은 서로 돕겠다며 아우성쳤다.

집을 떠나보면 분명해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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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라벤더 ⓒ 김보민

 
우리 가족끼리 숙소를 이용하는 여행을 했더라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아이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또 자신의 생활과 어떤 부분이 비슷하고 다른지 살펴보며 제 생활을 견주어 보기도 했다. 이렇게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게 노출되는 것도 이번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신선함이자 즐거움이었다.

이번 여행을 돌아보니 우리의 일상 자체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는 시점에 발돋움할 수 있는 준비와 연습 같다. 지금까지 아이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동네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외출과 외부 활동을 경험하고, 방문하는 공간에 따라 각기 다른 규칙을 지키는 연습을 했다. 이번 장기 여행에서 만끽한 즐거움은 일상에서 해온 연습의 결과인 셈이다. 

말로 모두 풀어낼 수 없는 마음과 감정을 여행 가방에 다시 차곡차곡 채워 넣고 집에 갈 준비를 한다. 시간이 흘러 이번 여행을 뒤돌아보는 순간이 오면, 46일간 집을 떠나 가방을 싸고 풀기를 반복한 우리가 모두 성장하는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우리 팀원들의 활약상이 어느 때보다 대단했기에 이 멤버 그대로 떠나는 다음 장기 여행을 계획하고 싶다.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미국 #여름방학 #보스턴 #프랑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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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스턴에 자리 잡은 엄마, 글쟁이, 전직 마케터. 살고 싶은 세상을 찾아다니다 어디든지 잘 사는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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