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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에서 캄보디아 국가 음원 제작, 이런 사연이

50년 만에 캄보디아 국가 디지털 음원 제작 및 기획에 참여한 캄보디아왕립예술대 류기룡 교수

등록 2023.08.15 11:09수정 2023.08.1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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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현지시각) 경상북도 이달희 경제부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캄보디아 왕립예술대학교에서 진행된 캄보디아국가 디지털 음원 CD전달식 장면. ⓒ 류기룡 캄보디아 왕립예술대 교수

 
2019년 8월 유난히 무더웠던 그해 여름, 캄보디아에서 온 27명의 왕립 합창단원들은 경상북도 도립교향악단(상임 지휘자 백진현)의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캄보디아 국가를 힘차게 합창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4시간에 걸친 몇 차례의 리허설과 연습 과정을 거쳐 마침내 합창곡이 완성됐다는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순간 합창단원들 사이에선 환호와 박수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단원 중에는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글썽이는 이들도 있었다. 반세기만에 캄보디아 국가 음원이 디지털 음원으로 새롭게 탄생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당시 캄보디아 국가 음원 제작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던 캄보디아 왕립대학교 음악과 류기룡 교수는 그 날의 감동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류 교수에게 지난 12일은 또 다른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 경상북도(도지사 이철우) 대표단이 도립교향악단의 연주와 캄보디아 왕립예술합창단의 합창으로 녹음한 캄보디아 국가(國歌, 노꼬르 레아, Nokor Reach) 디지털 음원 CD을 캄보디아정부에 공식 기증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국가는 이미 2019년 음원 제작을 모두 완료했지만, 같은 해 연말 터진 코로나19로 인해 공식 전달식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제작 당시 경북도립교향악단은 캄보디아 국가 음원 녹음프로젝트를 위해 6개월이나 편곡과 연주 준비 작업에 매달렸고, 캄보디아 왕립예술합창단도 같은 노래를 수도 없이 반복하며 무려 1년이나 연습했다.

경상북도가 다른 나라도 아닌 캄보디아의 국가 음원 제작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뭘까? 이를 알기 위해선 시간을 2006년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엄두도 못 내던 국가 디지털 음원 제작, 경상북도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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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국가 디지털 음악 제작에 참여한 류기룡 캄보디아 왕립예술대교수 지난 2019년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도립교향악단 연주와 캄보디아 왕립합창단의 합창으로 완성된 캄보디아 국가 디지털 음원이 캄보디아 전국 국가기관과 국공립 교육기관 등에 보급될 예정이다. ⓒ 박정연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에서 경상북도가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06'를 개최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 개막식에 참석하고, 지금은 고인이 된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의 패션쇼가 앙코르와트에 펼쳐진 것도 그때였다. 이후로도 경상북도와 캄보디아정부는 지속적인 문화교류와 협력을 유지해왔다.

참고로, 캄보디아의 국가는 1939년 작곡됐으며, 1949년 지금의 작사를 붙였다고 한다. 아날로그 방식의 음원이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20년이나 지난 1969년이었다. 그러나 당시 캄보디아에는 제대로 된 서양식 오케스트라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노로돔 시하누크 국왕의 특별 지시 아래 크메르 전통악기만을 이용한 음악과 합창으로 간신히 국가 음원 녹음을 완성할 수 있었고, 현재까지도 이 음원을 그대로 사용해오고 있다. 당시 열악한 녹음시설과 음향 장비로 인해 제작된 국가 음원의 수준과 품질은 일반인이 들어도 거북할 정도다. 소리가 둔탁하고 심지어 오래된 LP판처럼 잡음마저 들린다.

캄보디아정부도 새로운 국가 음원 제작이 시급함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라에 제대로 된 국립오케스트라가 아직 없고 국가재정도 넉넉지 않아, 새로운 국가 디지털 음원 제작은 사실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러한 차에 소식을 접한 경상북도가 팔을 걷어붙이고 도움을 주었다. 문화 ODA 사업의 일환으로 캄보디아 문화예술부와 협력해 캄보디아 국가를 재녹음하는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무엇보다 경북대 음대를 졸업한 류 교수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 국가 음원 제작에 드는 경비도 경상북도가 일체 지원했다.

"외국인이 다른 나라 국가 녹음... 사랑과 열정으로 시작"

새로운 캄보디아 국가 음원 제작과 기획은 물론이고, 캄보디아왕립합창단의 지휘까지 도맡아 참여한 류 교수는 성악가를 꿈꾸며 1996년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차이콥스키 음악원을 졸업한 전문 음악인이다.

그는 국내에서 8년간 예술분야 행정전문가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지난 2011년 캄보디아로 이주, 지금까지 12년째 현지 왕립예술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악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현지 한·캄 다문화자녀들로 구성된 라온제나어린이합창단 예술총감독으로 활동,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 동포간담회에 특별 초대받아 동요 합창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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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1월 캄보디아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동포간담회에 특별 초청받은 라온제나 어린이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는 류기룡 왕립예술대 음악 교수. ⓒ 박정연

 
"외국인인 제가 남의 나라 국가를 새로 녹음해 전하는 일을 처음에는 감히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이 또한 오로지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시작된 것이죠."

류 교수는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캄보디아 국가가 이 나라 국민들에게 전해지길 희망한다며 "새로운 국가를 제작한 학생들 그리고 따라 부를 캄보디아 국민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 한 구석이 찡해진다"고 심경을 밝혔다.

캄보디아 문화예술부는 경상북도 도립교향악단와 캄보디아 왕립예술합창단이 함께 녹음한 캄보디아 국가 '노꼬로 레아' 디지털 음원을 이 나라 정부 공공기관은 물론, 전국 초, 중, 고, 대학교 등 전국에 보급할 예정이다.

한편, 경상북도는 내년 말 캄보디아에서 경북도립교향악단과 캄보디아 왕립합창단의 협연 음악회를 개최, 새로 녹음한 국가 등을 연주할 예정이다.
#캄보디아 국가음원 #류기룡 왕립예술대교수 #라온제나어린이합창단 #경상북도 #경상북도 도립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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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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