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부산지법 303호 법정에서 부산환경운동연합 안하원 대표 등 16명이 도쿄전력을 상대로 제기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 금지 소송 1심 판결이 진행됐다.
김보성
"이 사건을 각하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 금지 청구 소송 선고일인 17일. 부산지방법원 303호 법정을 나서던 정상래 부산환경운동연합 대표는 화가 난 표정으로 1심 판결에 반발했다. 오염수 방류가 코앞인 상황에서 우리 사법부는 이번 소송이 부적합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정 대표는 "주권국에서 어떻게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는지 이해가 힘들다"라고 비판했다.
17일 부산지방법원 민사6부는 부산환경운동연합 대표와 회원 16명이 도쿄전력을 상대로 제기한 오염수 해양방류 금지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각하했다. 각하란 제대로 된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 판단 없이 소송을 끝내는 것을 말한다.
재판부는 국제조약과 우리 민법으론 일본 도쿄전력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재판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도쿄전력의 오염수 해양방류가 런던협약 등을 위반했느냐 여부였다.
남재현 판사는 "원고 측은 런던의정서와 비엔나 공동협약, 민법 217조 등에 근거해 이 사건을 청구하고 있다"라며 "재판규범이 될 수 없는 조약에 기인한 것으로 소의 이익이 없어 부적합한 것으로 판단한다"라고 판시했다. 또 민법 적용에 대해서도 "법의 규정과 대법원 판례 등을 비춰볼 때 이 법원에 국제 재판 관할권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국제사회는 해양오염의 문제가 커지자 1972년 22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폐기물 및 기타물질의 투기에 의한 해양오염방지에 관한 협약(런던협약)'을 맺었다. 1993년 런던협약 개정안에서는 부속서를 개정해 모든 핵폐기물의 해양투기를 전면 금지했다.
이러한 변화에 큰 역할을 한 건 일본이다. 1993년 러시아 핵폐기물 해양투기를 놓고 일본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방사성 폐기물 또는 그 밖의 방사성 물질'까지 금지 대상을 확대했다. 이후 1996년 채택한 개정의정서는 런던협약을 전면 개정해 사전예방·오염자부담 원칙 등 해양투기 금지를 더 강화했다.
이를 토대로 그동안 원고 측은 "일본 도쿄전력의 오염수 방류가 런던의정서 등에 금지된 폐기물의 해상 투기에 해당한다"라고 주장했고, 피고 측은 "이는 국가 간 조약이어서 개인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는 논리로 방어를 해왔다. 결국 2년 4개월 만에 나온 1심 각하 판결로 우리 재판부가 사실상 도쿄전력에 손을 들어준 모양새가 된 것이다.
시민단체 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민심의 변영철 변호사는 도쿄전력의 주장을 법원이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풀이했다. 변 변호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함께 판결문을 검토해 1심 결론을 바로 잡겠다"라고 원고 측의 항소 의사를 대변했다.
그는 "일본에 면죄부를 줬다"라며 이번 사례가 미칠 영향도 우려했다. 변 변호사는 "이대로면 협약에 가입한 국가의 국민, 회사가 일본처럼 투기하더라도 앞으로는 막을 방도가 없다는 의미"라며 "핵폐기물, 오염수 등을 더 강하게 규제해야 하는 시대적 상황인데 적신호가 켜졌다"라고 답답함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