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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 "검찰·사참위가 밝혀내지 못한 의문 많다"

세월호진실찾기진주시민모임, 21일 저녁 전인숙·박종대 초청 강연 진행

등록 2023.08.22 09:22수정 2023.08.2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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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진실찾기진주시민모임은 8월 21일 저녁 경상국립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유가족이 말하는 그 날의 기록. 세월호, 구조하지 않았다"는 제목으로 강연 행사를 열었다. ⓒ 윤성효

 
"아들은 처음 구조됐을 때는 '익수자'였지 '사망자'가 아니었다."
"해양경찰이 구조 단계별로 요구된 작위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고 이것이 누적돼 발생한 참사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피해자인 고 임경빈(단원고 2-4반)군의 어머니 전인숙씨, 박수현(단원고 2-4반)군의 아버지 박종대씨가 21일 저녁 경상국립대 100주년기념관 아트홀에서 열린 '유가족이 말하는 그 날의 기록 - 세월호, 구조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행사에서 한 말이다.

세월호진실찾기진주시민모임은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지속적으로 직접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 밝혀진 사실을 공유하고, 유가족 입장에서 '왜 자신의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 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유가족들은 검찰뿐만 아니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조사가 끝났지만 아직 제대로 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유가족들은 "아직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공소시효도 끝나가고 있다"라며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참사 3415일째'라고 언급한 박종대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을 사찰했던 기무사 직원 6명이 지난 광복절 때 특별사면으로 풀려 났다"며 "공식적인 진상규명 절차는 끝났지만, 남은 문제는 유가족들이 헤쳐 나가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지지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지원, 응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고 임경빈군 어머니 "많은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전인숙씨는 "응급헬기를 태우지 못한 이유조차 밝혀주지 않는 국가"라고 비판했다. 임경빈 군의 발견 위치와 사망 시간이 여러 자료마다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씨는 "아들의 발견 위치가 사참위 조사 결과에는 사고 선박 100m 인근 해역이라고 돼 있는데 구조 해경은 '세월호 15m'라고 진술했고, 사망 시간도 그날 오후 8시 10분과 6시 36분으로 돼 있다"라며 "엉터리 기록 자료가 있다. 여러 상황을 따져볼 때 해경이 아이들을 구조하러 간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라고 주장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구조 당시 죽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고 임경빈군은 그날 오후 5시 25분경 1010함 2번단정에서 구조가 됐고, 2009함 의료실로 이송된 뒤 지속적으로 심폐소생술(CPR)이 실시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날 오후 5시 59분경으로 추정되는 시각 목포한국병원 바이탈사인모니터에 잡힌 임경빈 군의 산소포화도는 69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를 설명한 어머니는 "총상을 입고 수술했던 사람이 산소포화도 30이었는데 살아난 사례가 있었다"라며 "임경빈군이 제때 헬기로 병원에 이송됐다면 살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사 과정에서 한 해경 대원이 "당시 3009함으로 익수자를 올리라는 지시가 있었고, 대외 홍보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익수자에 대해 응급조치를 하는 순간부터 3009함을 벗어나는 순간까지 동영상을 촬영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해경이 열심히 구조하고 있다는 것을 남기기 위한 목적이었닥 본다"고 진술한 내용을 전씨는 소개했다.
  
어머니는 "3009함에서 목포한국병원까지 헬기 이송에 소요되는 시간은 17분이면 된다"라며 "그런데 임경빈군은 구조된 지 4시간 41분만에 배로 이송됐다. 주변에는 8대의 헬기가 있었지만 사용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받은 답변서를 언급한 전씨는 "세월호 사고 당일 오후 해경은 항공기를 이용한 수색 구조를 하지 않았다"며 "당시 정부는 헬기를 투입해 구조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서는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당일 오후 사고 현장과 팽목항의 영상·사진을 보여준 전씨는 "해경은 함정으로 서망항까지 신속하게 환자를 이송했다 해도 40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고 임경빈군이 3009함을 떠나 서망항에 도착할 때까지 소요된 시간은 2시간 10분이었다. 그동안 환자를 함정에 태우고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전씨는 "1010함 단정과 다른 함정에서 고 임경빈군을 구조할 당시 영상, 목포한국병원 원격지도의와 3009함 응급구조사의 통화 녹음 기록, 3009함 의무기록지, 목포한국병원의 의무기록지와 원격진료영상 등이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처음 구조 당시 아들은 '사망자'가 아니었다고 한 어머니 전인숙씨는 "원격진료 의료시스템 영상 화면에는 분명 생존 신호가 있었다. 당시 해경이 가용할 수 있는 헬기는 모두 8대였고, 3009함 상공을 선회한 해경의 헬기도 3대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해경은 헬기를 이용한 후송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씨는 "검찰 수사 결과가 사실이라면 해경은 '사체'임을 확인하면서도 111분 동안 심폐소생술을 했다는 것이다. 이때 환자의 신체에 상처가 발생했고, 이는 또 다른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라며 "궁금한 게 너무 많고, 수사가 있었지만 많은 의문이 풀리지 않았으며, 더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 박수현군 아버지 "그래서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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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진실찾기진주시민모임은 8월 21일 저녁 경상국립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유가족이 말하는 그 날의 기록. 세월호, 구조하지 않았다"는 제목으로 강연 행사를 열었다. ⓒ 윤성효

 
아들을 잃은 박종대씨는 "해경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라는 말부터 했다. 그는 "세월호 선체가 기울어서 사망한 사람은 교사 양승진 1명뿐이었고, 나머지 303명은 선장과 선원, 해경이 구조하지 않아 발생한 것이다. 선장과 선원, 해경이 제대로 했더라면 303명은 구조됐을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월호는 출항하면 안 되는 배였다. 그런데 출항을 했고 이 부분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근본적으로 다 밝혀진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구조를 안한 것인가? 못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박씨는 "바다에서 사고가 나면 상황실장(상황담당관)과 지휘부의 각각 책임이 있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 초기 상황실 요원들의 늑장 보고와 늑장 전파가 있었고, 해경의 구조시스템 미가동과 지휘부의 노골적인 부작위가 있었다. 구조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최악의 참사가 났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씨는 "사고 당시 상황실 요원과 지휘부, 둘 중 하나만 자신들에게 부여된 임무를 완수했다면 단순한 해상 사고로 마무리됐을 것"이라며 "상황실에서 첫 번째 단추를 잘못 채웠던 것이 다음 구조 단계에 영향을 주었고, 이것이 마지막까지 지속된 것이 최악의 참사로 발전됐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는데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그는 "세월호 사고의 구조 작업은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할 수 없는 구조 환경이었다"라고 했다.

사고는 오전에 발생했고, 현장은 시정(안개) 거리는 18km, 풍속은 초속 4~6m, 파도는 0.5m, 수온은 12.6도였다. 이를 언급한 박씨는 "야간에 발생했다면 더 큰 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상황실 근무자가 종합근무를 하고 있는 시간에 사고가 발생해 평소보다 2배 많은 해경이 근무했으며, 승객들은 6시간 이상 생존 가능한 상황이었다"라며 "거기다가 승객 70% 이상이 젊은 학생이었고, 123정이 도착한 시점에는 바다로 뛰어내리지 않고도 구조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했고, 승객이 바다로 뛰어내렸다면 충분히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라고 주장했다.

당일 오전 9시 3분 31초에 해경과 여객선 승무원의 통화 내용도 언급했다. 승무원이 "지금 선내에서 움직이지 마시라고 방송을 계속하고 있고요"라고 하자 해경은 "그렇게 해주세요"라며 "구명동의 입고 최대한 차분하게 선장 지시에 따르고 계십시오"라고 했다.

여러 의문을 제기한 박종대씨는 "'구조하지 않았다'와 '구조하지 못했다' 중 어떤 표현이 맞을까. 구조하지 않았다는 구조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이고, 구조하지 못했다는 구조를 시도했지만 불가항력의 사유로 뭔가 부족한 구조 활동을 했다는 말이다"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월호 사고 당시 지휘권이 상황담당관으로부터 구조본부장과 조정관에게 이관된 사실이 없고, 해당 기능이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한 사실이 없으며, 상황실에서 '늑장 보고와 전파, 부실하게 구조세력 출동시킨 것'을 빼면 세월호 사고 당시 해경이 구했던 구조행위는 아무 것도 없었다"라면서 "구조 활동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로 보는 것이 옳다"라고 주장했다.

아버지는 "세월호 참사는 해경이 구조 단계별로 요구된 작위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고, 이것이 누적돼 발생한 것이다"라며 "따라서 책임자 처벌은 구조 단계별 부작위 책임자를 확인해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날 유가족들은 참석한 시민들과 함께 늦은 밤까지 대화를 이어나갔으며, 엄경근 산청간디고 교사(미술)가 그린 '세월호' 작품을 유가족협의회에 전달했다. 진주시민모임은 매월 첫 번째 토요일마다 진주시내 차없는거리에서 '세월호 손팻말 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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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진실찾기진주시민모임은 8월 21일 저녁 경상국립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유가족이 말하는 그 날의 기록. 세월호, 구조하지 않았다"는 제목으로 강연 행사를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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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진실찾기진주시민모임은 8월 21일 저녁 경상국립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유가족이 말하는 그 날의 기록. 세월호, 구조하지 않았다"는 제목으로 강연 행사를 열었다. ⓒ 윤성효

#세월호 참사 #세월호진실찾기진주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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