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정원이 더 근사해 보이는 건 아니다
유신준
길을 걷다가도 정원을 눈여겨 보게 된다. 눈에 띄는 정원들은 대개 손질이 잘 된 정원들이다. 정원을 보면 주인의 성품이 느껴지는 것이다. 정원 손질을 안 해서 나무가 웃자라거나 방치된 경우에는 저 집 무슨 일이 있구나 생각하게 될 정도다. 주인이 아파서 몸져 누웠다든지.
일하러 다니다보면 한 집도 같은 정원은 없다. 정원들은 사람들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그럴 수밖에. 공통점도 눈에 띄었는데 츠쿠바이(足+尊)가 있는 것이다. 츠쿠바이는 다실에 들어가기 전 손을 씻고 입을 헹구는 물그릇이다. 돌로 만든 물그릇이 정원마다 하나씩 놓여 있었다. 왜 돌 물그릇이 일본정원에 있을까?
일본정원의 3종 세트
사연을 알기 위해서는 무려 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4세기 무로마치(室町) 시대에 유행했던 양식이라니까. 내전이 유난히도 많았던(말기에는 온 세상이 쑥대밭됐던 오닌의 난도 있었다) 그 시대의 문화인들에게 다실(茶室)이 유행했었다. 지친 삶을 위로해 줄 공간이 필요했던 거다. 잠시라도 이 지겨운 세상을 잊고 싶다. 삶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세상과 단절된 별천지를 꿈꿨다.
그들이 별천지를 만들기 위해 고심한 흔적들... 울타리를 치고 별도의 문을 만들었다. 울타리와 문은 세상과 단절을 의미한다. 별천지 안에 들어오면 더 이상 흙도 밟지 않아야 한다. 길에 징검돌을 놓았다. 징검돌을 건너오면서 세상의 것들을 씻어내기 위해 츠쿠바이를 만들었다.
츠쿠바이는 본래 쪼그려 앉는다는 뜻이다. 쪼그려 앉아서 손을 씻어야 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당신이 누구든 상관없다. 쪼그려 앉아라. 손 씻고 입 헹구고 세상 것들을 다 털어버리고 들어오너라. 다실에 들어가기 위한 절차다. 별천지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별천지는 세상과 달리 누구에게나 평등한 공간이다. 밤에도 가고 싶으니 석등도 필요했다. 츠쿠바이와 징검돌, 석등 3종 세트는 그렇게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