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민간인희생자 유족 차정호씨
주간함양
"수동에 위령탑을 세워서 73년 만에 아버지 이름을 불러봤어. 감개무량해"
유복자였던 그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 어머니는 나이 서른 살에 혼자되어 아들, 딸 남매만 보고 평생을 사셨다. 차정호씨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생이별을 한 것 같아 합분하여 모시고 산에 올라갈 때마다 절을 올린다.
차정호씨 아버지는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다. "우리 동네에 똑똑한 사람이 네 명 있었는데 모두 보도연맹에 가입했어. 그 중 세 명은 사망하고 한명은 산중으로 숨어 살았어. 나라에서 가입하라고 해서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가입해서 죽은거라. 참 억울하제" 아무 죄가 없다 하시며 끌려갔던 아버지는 당그래 산에서 학살됐다.
"아버지는 보도연맹에 돌아가셨지만 삼촌이 아버지의 한을 갚기 위해 이북으로 끌려 올라갔어요. 행방불명이지요. 한때는 연좌제 걸렸는데(아들 유학갈 때 알았지) 폐지가 돼서 이제는 괜찮지요. 삼촌도 진실규명위원회에서 풀렸어요. 차태천이요. 나는 몰랐는데 여기 마을 어른들 말로는 겁나게 똑똑했다케요. 그 당시 공부도 많이 했고. 할아버지가 학자셨거든"
할아버지는 아들을 빼내기 위해 함양경찰서로 가서 돈 한 뭉텅이를 찔러줬지만 돈 들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는 담도 크고 하셔서 나는 아무 죄가 없다 하시고 끌려가셨어. 그래서 함양 경찰서에 잡혀 계시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학자에 똑똑하시니까 어쩌면 돈으로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 하시면서 함양 경찰서에 갔지.
그런데 돈은 돈대로 받고 며칠 있다가 당그래 산에서 처형이 돼버리셨어. 엄한 사람한테 돈을 줬나봐. 그 정도 돈을 정확하게 찔렀으면 효과가 있었을 텐데 엄한 다리를 긁었던 거지."
며칠 뒤 당그래산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한 어머니는 썩은 시신을 들춰가며 남편을 찾았다. "유월 열 이튿 날이면 제일 더울 때 아닙니까. 자기 남편이니까 시신 썩은 건 신경도 안 쓰고 오로지 시신 찾아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뒤지셨던 거지. 아버지가 금이빨이 하나 있었다 케요." 보도연맹 사건으로 한날한시에 사망한 희생자들로 함양에는 유월 열 이튿날이 제삿날인 집이 여럿 있어 이맘땐 장날이 북적였다고 한다.
공부하는 자식위해 반야심경 매일 써
아버지를 대신했던 할아버지는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차정호씨에게 추구, 사자소학을 쓰게 하며 가르치셨다. "할아버지한테 배워서인지 지금도 시간나면 한문을 쓰고 싶어요." 달력을 버리지 않고 뒷장에 반야심경 281자를 1300번 넘게 썼다는 차정호씨. 그는 글을 써 내려가며 멀리서 공부하는 자식들을 생각했다.
"자식은 모르지만 부모는 자식한테 그런 애정이 있어요. 공부하는 그 고통을 내가 나눠보자 해서 하루 한 번씩 썼어요. 오늘 못쓰면 내일 두 번 썼어요." 비록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던 그였지만 학업에 증진하는 자녀에게 그 뜻을 전하기 위함이었다고.
"나는 우리 아들한테 그랬어. 너거는 나를 어려서부터 아버지, 아버지 부르는데 나는 그 석자를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 번도 못 불렀다.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모시고 나서야 아버지를 불러본다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아버지 발자취를 반이라도 따라가려고 바르게 살아온 차정호씨. 위령탑이 세워져 꽃을 놓고 절을 할 수 있게 되어 더는 바랄게 없다.
* 이 기사는 증언자의 구술을 그대로 살리고자 방언을 사용하였습니다. 구술 내용 중 날짜, 나이, 숫자 등에는 구술자의 기억의 외곡이 있을 수 있으며 전체 내용 또한 증언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기록됐습니다.
유족
■ 이름 : 차정호
■ 희생자와의 관계 : 희생자의 아들
■ 생년월일 : 1950년 9월1일 / 만 73세
■ 성별 : 남
■ 주소 : 함양군 백전면 서백길28
■ 직업 / 경력 : 농업
희생자
■ 이름 : 차태석
■ 생년월일 : 1914년 2월9일
■ 사망일시 : 1950년 음력6월12일
■ 성별 : 남
■ 결혼여부 : 기혼
■ 주소 : 경남 함양군 백전면 서백길28
■ 직업 / 경력 :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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