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끼치기 싫어하는 일본이 왜?

오염수, 문제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아직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등록 2023.08.31 18:12수정 2023.08.3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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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6년 정도 거주한 경험이 있다. 한두 해가 아니다 보니 한국인과는 다른 일본인들의 사고 방식과 그들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가 많았다.

메이와쿠(迷惑). 타인에게 끼치는 폐를 뜻하는 이 말은 일본인들이 어릴 때부터 교육받으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라고 했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
실제로 이런 말은 일본 드라마에서도 자주 듣게 된다.

일본에서 살던 몇 년 동안 아주 사소한 것부터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지하철을 타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 닿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길을 걸을 때는 마주 오는 사람이나 주변 사람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방향과 속도와 거리를 조절했다. 약속을 잡으면 늦지 않으려고 5분이나 10분 전에 약속 장소 근처에 도착해 있다가 정시에 장소에 나타나는 것처럼 실제로 일본인들이 하는 방식을 듣고 따라 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놀란 것이 한 가지 있다. 일본인은 스스로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만큼 남이 나에게 폐를 끼치는 것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아이가 유치원을 다녀왔는데(일반적인 일본의 유치원이었다) 실수로 친구와 부딪히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아이가 유독 속상해하는 점이 있었는데 본인은 사과를 했는데도 친구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우리 아이가 "미안해" 한 마디를 했고 일본인인 친구는 왜 남을 아프게 하고는 사과를 한 번밖에 안 하느냐, 사과는 세 번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로서는 정말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했는데 두 번, 세 번 하라고 하니 오히려 납득이 되지 않아 친구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작은 일이지만 이 일을 겪은 후 나는 많은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평소에 조심하고 한없이 친절한 일본인들이 왜 어떤 상황에서 차갑게 돌변하거나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서로 얼마나 조심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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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해양 방류 시작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8월 24일 오후 1시 33분께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 방류를 시작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모습. ⓒ 연합뉴스

 

오염수, 처리수. 용어는 다르지만, 아무튼 다른 국가들과 그 국민들이 반대하고, 심지어 자국민들도 반대하고 피해를 호소하는 일을 일본이 하고 있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메이와쿠'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메이와쿠'임에도 불구하고 꼭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어쩌면 아직 바닷물에서, 해산물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았고, 방사능 자체로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낄 이유도 없고, 사과를 할 상황에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염수 #후쿠시마 #원전 #원전폭발 #처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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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사업을 개발하는 직장인 ●작가, 시민 기자, 기업 웹진 필진 ●음악 프로듀서 ●국비 유학으로 동경대학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공학박사 ●동경대학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쿄대 스토리"의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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