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신사역 안에 설치된 성형외과 광고.
연합뉴스
여름 내내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며, 대한민국 광고 시장을 두 업종이 양분하고 있는 걸 보았다. 학원과 병원, 즉 교육와 의료다. 약 20년 전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내걸고 최초로 원내 진출에 성공했던 진보정당이 떠올랐다. 적어도 돈 없어 치료 못 받는 세상, 학교 못 가는 세상은 탈피하자는 주장이 그땐 제법 먹혀서, 10명의 의원을 당선시켰다. 그런데 20년 뒤, 이 둘은 한국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업종이 된 모양이다.
잘나가는 1타 강사의 소득세가 100억 원이 넘는 시대,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와서, 한국 학원 강사를 하는 시대에 공교육은 만신창이가 됐다. 한국에 오자마자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터졌다. 강연장에서 만난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가 완전히 무기력해졌다는 사실을 토로한다. 국어 시간에 작문 수업을 했더니, 다음날 학부모로부터 "교과서 진도나 나가시죠"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동료 교사는 "당신이 그러면 우리만 괜히 비교당해" 튀지 말라 종용한다. 사건이 터지면 교장은 교사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 뒤로 숨는다. 그 상황에서 용기를 내는 건 무모한 자해행위다.
모든 학생은 결국 수험생의 정체성을 갖는다. 그들의 공통된 목표는 의대에 가거나, 그게 안 되면 스카이대학의 다른 과에 가는 것. 그런 와중에 "쓸데없이" 전인교육 따위 시키지 말라 학부모가 요구한다. 이 판의 승자들, 그래서 결국 의사가 된 사람들은 버스에, 지하철 전동차에, 역에, 스크린 도어에, 버스에, 심지어 대형마트 카트에, 아파트 엘리베이터까지 최신 장비로 시술과 수술을 한다며 학원 강사들과 같은 표정, 같은 포즈로 광고를 한다.
의사가 가장 확실하게 돈 잘 버는 직업이어서, 서울대 물리학과보다 부산의대가 더 인기 있어진 상황이니, 그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 모객에 열심인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비슷한 표정, 비슷한 분위기로 학원 강사와 의사들이 광고지면을 도배하는 현상은 거부감을 안겼다.
20년간 프랑스에 살며 병원이 광고를 하는 걸 본 적은 없었다. 의사들은 자신의 이름과 업종이 새겨진 A4 크기 금속 패널을 병원 건물 입구에 간판처럼 붙일 뿐이다. 여기도 남부럽지 않은 울트라 자본주의 사회지만, 의료와 교육은 기본적으로 공공 서비스의 영역이란 인식이 있는 것이다. 돈다발을 흔들면 서비스 속도가 빨라지는 민간 병원이란 트랙이 공존할 뿐.
한국 사회 고도성장의 원동력이 높은 교육열에 있다지만, 가장 병든 지점도 교육인 것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이 서로를 해하고 목숨을 던지던 학교에서 이젠 교사들이 그 뒤를 잇는다. 수능 고득점을 책임지지 못하는 학교는 시대가 요구하는 쓸모를 상실했고, 학원이 할 수 없는 보편적 교육의 역할도 하지 못한다.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없애라는 지시를 대통령이 했을 때, 언론은 학교 교사가 아니라, 1타 강사들을 인터뷰했다. 학원의 힘이 비대해질수록, 한국 교육은 수렁에 빠졌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독을 빨아야 했다. 이 아수라판에서 1타 강사들의 도움으로 킬러문항을 돌파하고 마침내 승리의 고지에 도달한 자들. 의료 기술을 가진 자영업자들이 재주껏 마케팅하며 고객을 유혹하는 사회의 보건 의료는 어떤 모습인가?
엄마를 모시고 한국 오자마자 병원을 들락거리며 관찰한바, 병원의 최대 관심사는 비싼 시술을 받겠다는 고객님의 사인을 신속하게 받아내는 데 있는 걸로 보였다. 종종 직업윤리를 잊지 않은 단단한 양심의 의사들이 있을 뿐. 그들의 과도한 욕심을 자제시키는 제도적 장치는 전무했다. 요란한 광고들과 더불어, 별도로 마련된 사무실에서 숙련된 어휘로 고객의 계약서 사인을 유도하는 상담 전문 직원의 태도가 병원의 속내를 웅변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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