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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도 아니면서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

[독일] 북쪽 함부르크로, 다시 바다로

등록 2023.09.10 11:33수정 2023.09.1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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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도 더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이제는 독일 여행을 마치고 북유럽으로 향할 때가 왔기 때문이었죠. 옅은 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날씨도 어느새 추워지고 있었습니다. 북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여름이 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렇게 독일 여행의 마지막 도시, 함부르크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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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의 운하 ⓒ Widerstand


함부르크는 큰 도시입니다. 베를린에 이어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죠. 뮌헨이나 쾰른, 프랑크푸르트보다도 큰 도시입니다. 독일 최대의 항구도시이면서, 수도가 아닌 도시 중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독일에서는 베를린, 함부르크와 브레멘만이 주와 동일한 권한을 갖는 도시주로 관리되고 있죠.

숙소에 짐을 두고는 곧바로 엘베 강으로 향했습니다. 함부르크는 항구 도시이지만, 직접 바다를 접하고 있는 도시는 아닙니다. 다만 큰 엘베 강을 타고 바다와 연결되어 있죠. 북해에서 강을 따라 함부르크로 들어왔다가, 중부 유럽으로 물류를 운송할 수 있는 최적의 요건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함부르크가 큰 도시가 된 것도 현대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함부르크는 이미 12세기부터 북해 무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도시였죠. 함부르크는 북해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무역 동맹인 한자 동맹의 일원이었죠.

한자 동맹이 해체된 뒤에도 북독일 지역 경제 중심지로서 함부르크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항구도시인 함부르크는 곧 자유무역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였습니다. 근대에도 유럽 최대의 항구로 번성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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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의 항구 ⓒ Widerstand


독일은 1871년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을 모아 '독일 제국'을 만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독일 내 각 주의 영역은 과거 영주들의 영지와 일치하는 구조였죠.

독일 제국은 1차대전에 참전했습니다. 전쟁 말기 수병의 반란과 11월 혁명으로 독일 제국은 멸망했죠. 독일 땅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이 세워졌습니다. 군주정이 폐지되고 국민주권을 선언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당시에는 선진적으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헌법으로 규정한 선진적인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국 시절의 주 경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독일은 연방제 국가였고, 각 연방이 가진 힘을 조절하는 것은 국가 권력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옛 영주들의 영토를 그대로 남겨둔 주의 경계는 각 지방 사이 불균형을 초래했죠.

당장 독일 통일의 중심이 되었던 프로이센 주는 다른 주에 비해 압도적인 영토와 경제력을 보유했습니다. 각 주 사이 면적과 경제력이 불균등하다는 점은 강력한 지방자치를 특징으로 하는 독일 정치의 발전을 교묘하게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방 제도가 재편된 것은 2차대전 이후의 일입니다. 서독과 동독이 만들어지면서 각 주의 영역을 완전히 새롭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바꾸었죠. 그나마 바이에른 주 정도가 그 독립적인 성격 때문에 주의 영역을 온전히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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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의 항구 ⓒ Widerstand


하지만 독일의 지방자치가 완전히 재편되는 과정에서도, 함부르크만큼은 예외였습니다. 함부르크는 무역을 기반으로 성장해, 특정한 영주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유도시였습니다. 세금과 규제의 압박 없이 자유롭게 무역에 나설 수 있도록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내린 조치였죠.

함부르크는 독일 제국이 성립할 때도 독립된 도시로 인정받았습니다. 비스마르크가 주도하는 독일 제국에 편입되는 대신, 그 자치권을 인정받은 것이죠. 함부르크는 이 시기부터 '함부르크 제국도시'라 불리며 각 주와 동등한 권리를 누렸습니다.

그 구조는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함부르크의 공식 명칭은 '함부르크 한자자유시(Freie und Hansestadt Hamburg)'입니다. 독일 안에서 셋 뿐인 도시주의 지위를 차지한 것도 단순히 인구가 많기 때문은 아닙니다. 특정 지방에 속하지 않은 도시로서 오랜 기간 이어진 역사적 맥락을 인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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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 Widerstand


동서독이 분단된 이후, 함부르크도 한동안 쇠퇴의 시대를 겪었습니다. 함부르크는 북해 지역으로 들어오는 물류를 중동부 유럽으로 연결하는 항구 도시였습니다.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 교류가 극단적으로 줄어든 냉전 시대, 함부르크의 입지도 약화될 수밖에 없었겠죠.

그러나 독일의 재통일과 냉전의 해체로 함부르크는 다시 한 번 성장의 전기를 맞았습니다. 지금 함부르크는 독일 내에서 1인당 GDP가 가장 높은 지역입니다. 무역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함부르크는 금융업과 은행업에까지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죠. 독일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만들어진 곳도 함부르크였습니다.

부유한 도시이지만, 자유로운 도시로서 함부르크의 모습도 썩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정치적으로도 가장 진보적인 지역이죠. 독일의 현직 총리인 사민당의 올라프 슐츠 총리가 과거 함부르크의 시장을 역임하기도 했죠.

지금도 함부르크 시의회 123석 가운데 54석을 사민당이, 33석을 녹색당이, 13석을 좌파당이 가지고 있습니다. 진보적 진영에 속하는 의원이 100명에 달하는 셈이죠. 반면 우파 정당인 기민련 소속 의원은 15명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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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시내의 현대적인 성당 ⓒ 김찬호


결국 항구와 무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자유로운 도시라는 것이 함부르크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이 땅에 자유와 풍요를 가져온 엘베 강변을 어쩐지 오래 걸어 보았습니다. 강변에는 현대적인 건축물이 늘어서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엘베 강은 함부르크를 바다와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강을 따라 사람과 물건이 오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오가며 만들어낸 부와 자유가 늘 이 도시를 뒷받침하고 있었죠. 이 강이 만들어낸 도시의 풍경이었습니다.

부와 자유의 확산. 어쩌면 인류사 전체의 목표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넓은 강의 하구를 낀 이 도시는 그 목표를 향해 아주 오래 전부터,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변곡점이 있었던 독일의 현대사 안에서도, 그 목표는 결코 흐려지지 않았습니다.

대륙을 따라 가다 북쪽으로 달려 드디어 항구를 만났습니다. 한동안은 바다와 항구, 그리고 그 바다가 가져온 부와 자유의 국가들을 여행하게 되겠죠. 대륙을 떠나 바다로, 많은 사람들이 오갔을 이 항구 도시에서 독일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세계일주 #세계여행 #독일 #함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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