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Widerstand
독일은 2차대전에서 패전한 뒤 연합군에 의해 지배를 받았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독일의 영토를 나누어 지배했죠. 독일을 분할한 네 나라는 전후 독일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이 수도 베를린이었습니다. 베를린은 원칙대로라면 소련의 점령 지역에 속했습니다. 독일 영토의 동쪽에 있었고, 베를린을 처음 장악한 것은 소련군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베를린에는 수도라는 상징성이 있었습니다. 결국 연합국은 베를린을 네 나라가 나누어 지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49년 서독과 동독이 성립되면서도 문제는 계속되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의 지배 영역은 합쳐져 서독이 되었습니다. 소련의 지배 영역은 동독이 되었죠. 하지만 베를린은 여전히 나뉘어 있었습니다. 서베를린은 서독이, 동베를린은 동독이 행정권을 행사했죠.
베를린은 동독 영토 한가운데에 위치한 땅이었습니다. 결국 서베를린은 서독 영토와 한참 떨어진 월경지가 되었죠. 게다가 법적으로 베를린은 서독과 동독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연합국 4개국의 공동 지배 지역이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서독과 동독이 행정을 담당했지만, 법적으로는 그랬습니다.
덕분에 서베를린은 서독 연방의원도 선출하지 못하고, 서독 기본법도 적용되지 못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서독은 본을 행정수도로 삼아야 했죠. 공산권인 동독 영토 한가운데에 살아야 하는 서베를린 시민들은 안보 위협도 강하게 느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