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밧줄성산읍 키아오라리조트에 있는 배롱나무에 쇠밧줄을 감아 동북쪽 바위에 고정해 놓았다.
이봉수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기운이 더운 습기와 열기를 몰아내기 때문'이라는 원인 규명도 풍수지리의 이치와는 다르다. 북반구에서는 북쪽에 산이 있어 찬 북풍을 막아주는 양지바른 곳을 살 만한 복거지(卜居地)로 친다. 제주도에서는 한라산 남쪽이 바로 그런 곳이다.
제주목에 장수 노인이 더 많았던 이유는 행정·군사권력이 집중돼 있고 백성들이 육지 무역 등으로 더 잘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유추해본다. 목사는 원래 정3품 중에서도 당하관이지만 제주 목사만은 건물 위로 올라가 어전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당상관이었으니 종6품 현감과는 천지차이다.
지금은 행정체계상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동급일 뿐 아니라 교통이 편리해 어디에 사나 큰 차이가 없다. 관광이나 정착을 위해 제주도로 오는 이들이 주로 남쪽에 주거를 정하려는 이유도 기후가 더 온화하기 때문이다.
중문관광단지와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최고급 호텔들이 서귀포시에 들어선 것도 같은 이유다. 전망 좋은 한라산 남쪽 중산간 농촌지역은 더 많이 자연에 노출되고 싶어하는 이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제주도에 장수 노인이 많은 이유
제주도에 장수 노인이 훨씬 많은 이유가 뭘까? 첫째, 기후가 온화한 지역에서 자연을 가까이하고 싶어하는 본능을 충족하는 것이 건강이나 수명에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자연 노출과 건강 그리고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높다는 연구는 계속 나오고 있다.
2021년에 나온 히메네스(Marcia P. Jimenez) 등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자연을 가까이할수록 건강하고 행복해진다.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우울증과 불안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시절 자연을 많이 경험하는 것이 성인이 되었을 때 건강과 행복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물이 좋다는 점이다. 제주도는 현무암 덩어리와 화산토로 뒤덮여 있다. 비가 내리면 땅속으로 스며들어 대수층을 따라 흐르다가 해안 근처에서 미네랄이 풍부한 용천수가 되어 치솟는다. 제주도 물은 다 삼다수와 비슷해 수돗물을 마셔도 너무나 좋다고들 한다.
의사나 과학자가 아니어서 권위있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나 스스로는 2년 가까이 제주살이를 하면서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광대뼈 근처에 오래된 검버섯과 기미가 있었는데 싹 없어진 것이다. 평생 정신노동을 하다가 키아오라리조트 2천평 정원을 가꾸느라 육체노동을 함께하면서 수도물을 많이 마시고 때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를 한 덕분이 아닌가 짐작할 따름이다.
셋째, 가장 중요하면서도 실질적인 건강 비결은 제주어로 '우영팟'이라 부르는 텃밭의 효용인 것 같다. 해양문명사와 민속학의 대가인 주강현 교수는 <제주기행>에서 '우영팟과 거친 음식이 장수 비결'이라고 썼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도 키아오라리조트 빈터에 30평쯤 우영팟을 일구고 고추, 부추, 가지, 파 등 16가지 채소를 심었는데, 깻잎, 상추, 치커리 같은 것은 소출이 많아 투숙객들에게도 얼마든지 따먹으라고 말한다. 참외, 수박, 오이, 호박, 옥수수 같은 것도 여러 개 따서 나눠 먹곤 했다.
고구마와 땅콩은 아직 캐지 않아 초보농부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고구마는 한때 고라니가 잎을 절반쯤 뜯어먹어버려 아까웠는데 금방 복원되는 게 신기했다. 유채밭도 관상용으로 30평쯤 조성해 이른 봄에는 상큼한 유채나물이 미각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