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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값 때문에... 동네 며느리들이 부러워합니다

올해 유난히 비싼 과일, 마냥 좋아하기도 어려워

등록 2023.09.16 18:51수정 2023.09.1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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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가을엔 우리 집에 택배가 자주 온다. 엄마가 보내주는 먹거리 덕분이다. 상추, 감자, 오이, 깻잎, 과일까지... 밭에서 갓 건져온 듯한 신선한 채소와 과일들이 박스에 꽉꽉 담겨 있다. 작은 바늘 하나도 들어갈 틈이 없는, 아주 과학적이고 조직적인 모습으로. 


이 시기에는 엄마의 목소리에도 힘이 잔뜩 들어간다. 

"택배 잘 받았나? 더 보내고 싶은데 자리가 없어가 고것만 보냈다. 밖에서 사물라 카면 얼마나 비싼지 알제?"

나는 엄마의 긍지를 높여주기 위해 한층 더 업 된 목소리로 답한다.  

"알지, 알지~ 요즘 마트에서 과일이랑 채소 무서워서 못 사 먹는다. 과일 몇 개만 담으면 십만 원이 훌쩍 넘는데, 내가 엄마 아니면 이런 거 우에 마음껏 먹겠노."

비싼 가격에 들었다 놨다
 
버선발로 반기게 되는 엄마의 택배  옛날엔 달갑지 않았지만 요즘은 목 빼고 기다리다
버선발로 반기게 되는 엄마의 택배 옛날엔 달갑지 않았지만 요즘은 목 빼고 기다리다 조영지
 
엄마는 기분이 좋아진 목소리로 다음에 또 보내주겠다는 약조를 남긴다. 말 몇 마디에 효도한 것 같은 얄팍한 기분이 든다. 실은 '이렇게까지 많이 먹을 사람이 없는데...' 하는 마음도 있지만, 엄마 기분 좋은 걸로 퉁친다. 


그렇다고 전부 빈말인 것은 아니다. 엄마의 잦은 택배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젠 안 오면 섭섭한 정도를 넘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그럴 땐 앙큼하게 딸애를 시켜 택배 보낼 날을 캐묻는다. 요즘 마트 물가를 생각해 보면 엄마가 보내주는 택배가 우리의 살림 밑천에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썩거나 시들어서 버리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젠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없어서 못 먹는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올해는 과일의 인기가 전성기를 맞은 아이돌 급이었다. 


"엄마, 왜 할머니 복숭아 왜 안 보내주시지?"
"엄마, 사과 딸 때 지나지 않았어? 언제 보내주신대?" 


딸아이의 과일 팬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과일을 좋아하는 딸 때문에 늘 장 볼 때 과일은 꼭 몇 가지씩 담았는데 이번 해엔 들었다 놨다만 수없이 하다가 가격표를 보고 그냥 놓고 온 적이 많았다.

그러니 친정에서 보내준 과일이 눈물겹게 반가울 수밖에. 사과와 복숭아 농사를 짓는 친정의 수혜로 냉장고 과일 칸을 가득 채워 놓으면 절로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게다가 과일 귀신들을 데리고 사는 동네 엄마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기도 한다. 

"요즘은 집 사주는 친정 시댁이 부러운 게 아니라 과수원 하는 집이 그렇게 부럽다니까..." 

소비자의 체감 가격은 늘 비싸
 
냉장고 안에 엄마가 보내준 과일로 가득  왠지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냉장고 안에 엄마가 보내준 과일로 가득 왠지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조영지
 
그만큼 과일 값이 후덜덜 하다는 뜻일 것이다. 올해 유난히 과일값이 비싼 이유는 이상 기후로 인해 작황이 부진한 영향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수원 집 딸이기도 하고, 소비자이기도 한 내가 느끼기엔 농민들이 과일을 비싸게 내놓든, 싸게 내놓든 소비자의 체감 가격은 늘 비싸다.  

비싸고, 더, 더, 더, 비싸고의 차이다. 몇 해 전 복숭아 가격이 형편 없었던 적이 있었다. 돈도 안 되는 농사, 당장이라도 그만두겠다며 엄마는 속상해했는데 내가 마트에서 보는 가격은 저렴하지 않아서 그 심정이 크게 와닿지 않았던 적도 있다. 

농민들은 농작물 값이 쌀 때, 울며 겨자 먹기로 내놓거나 팔기보다 버리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멀쩡한 복숭아들이 밭에서 그대로 썩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한 적도 있었다. 

내가 아까워서 발을 종종 거리면 어차피 수확하는데 들어가는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다며 한숨만 쉬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상황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나로서는 과일이 비싸다고 구시렁댈 수도, 또 싸다고 신나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11일 국가·도시 비교 통계 사이트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열다섯 번째로 장바구니 물가가 비싸다. 집계에 의하면, 서울시민은 아시아에서 가장 비싼 사과(1㎏ 8500원)를 먹고 있다고. 대량 생산이 불가한 환경적 요인과 외국과는 다른 복잡한 유통 구조 때문이란다.

뭐가 됐든 생산자도, 소비자도 만족할 수 있는 가격 구조는 진정 어려운 것일까? 내가 엄마에게 "올해는 좀 살만 하겠수"라고 능글하게 물으면 엄마는 "그간 적자를 메우려면 한참 멀었다"라고 답을 한다. 웃으래야 웃을 수 없는 웃픈 상황인 것이다.  

얼마 후면 추석이다. '햇곡식과 과실이 영그는 풍요로움을 즐기고 만끽한다'라는 추석의 의미가 영 새삼스럽다. 추석 제사상 비용이 지난해 두 배 이상일 거라는 뉴스에 내 마음은 더 곤궁해지기 때문이다.

제사 상차림 비용을 걱정하는 소비자의 마음도, 조상님에게 내년의 농산물 값을 지켜 주십사 비는 농민들의 마음도 추석 보름달님에게 잘 가닿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과일값 #후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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